근현대사에서, 내 삶에서 만난 씨알

박재순l승인2016.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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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마을 43호(2013.12) 조한아

지난 10월 박재순 선생님의 '한국근현대사와 씨알사상' 강의를 통해 우리 근현대사를 새로이 정리하게 되었고 '씨알사상'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국사와 세계사 같은 과목을 좋아해서 다른 교과서는 다 버렸어도 국사교과서는 아직도 집 책장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데 고등학교 때까지 배웠던 역사와 이번에 알게 된 역사는 사뭇 다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실학은 단지 서양문물을 통해 실용적인 학문을 발전시킨 거라 배웠는데,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고 중국 사대의식에서 눈을 뜨면서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에 주목하기 시작한 민족의 첫 '자각' 사건이었다는 것은 저에게 꽤 큰 충격이었습니다. 동학이, 민(民)이 주체가 되어 서구문명의 침입에 대해 주체적, 창조적으로 응답한 움직임이라는 것도 새로웠습니다. 만민공동회가 본격적인 시민운동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장이었다는 것 역시 전에는 알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관(觀)이 다르면 같은 사건도 전혀 달리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떤 한 사건이 다른 사건과 만날 때 그 사건은 창조적 의미가 발생하는 것처럼 이번 강의가 저에게는 한국근현대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보고 전과는 다른 의미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씨알이라는 말은 유영모 선생님이 처음 썼지만 세상에 알린 것은 함석헌 선생님입니다. 참된 주체가 되어 전체(공동체)로 살아가는 것, 자기를 깨뜨려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 생각하는 씨알로서 살아가는 것, 새 나라를 이루려는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우뚝 서는 삶이 씨알사상입니다. 나는 죽고 씨알이 싹트게 하여 새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씨앗이 싹을 트고 꽃과 열매를 맺는 것은 우주 만물이 서로 사랑하고 섬김으로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햇빛과 바람, 땅의 흙과 물이 서로 겸허하게 자신을 내어주고 상대를 받아들여 모시고 받듦으로써 씨앗은 아름답고 존귀한 생명으로 피어나는 것입니다. 겉보기에 작고 초라하지만 아름답고 존귀한 생명을 품고 있는 씨알은 아름답고 풍성한 생명을 꽃 피우기 위해서 아낌없이 깨지고 죽어야 합니다. 씨알 자체가 죽음으로써 사는 진리를 나타내는 것이지요.

지난 봄, 겨우내 죽은 것 같았던 마른 나뭇가지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의 기운으로 새로 싹이 돋고 꽃과 잎을 틔우며 자라는 나무의 생명력에 새삼스레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교육현장에서 드러난 저의 욕망과 잘못된 본성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괴롭고 힘든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을 때 나도 나무처럼 살아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온전히 죽고 새로운 몸으로 다시 나고 자라고 죽고 또 다시 태어나야지 하며 다짐을 했습니다. 씨앗이 혼자서 싹을 틔울 수 없고, 나무가 혼자서 꽃을 피울 수 없듯이 공동체가 없이는 나도 다시 살 수 없구나 싶었지요. 공동체가 있어 참 감사했습니다. 저는 지금 몸 된 관계가 있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전에는 '몸'이 없어서 혼자 살아갔던 것 같습니다.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실행하고, 그러다 넘어지면 자책하고, 스스로 좌절하고, 스스로 체념하고, 스스로 결론짓고 그렇게 혼자의 힘으로 살았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주체적인 거라 착각하며 이기적으로 개인적으로 살았지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안 들리기도 했고 듣기 싫어하기도 했습니다. 한 때 주체적인 것이 무엇인지 헷갈렸는데 공동체에서의 생활과 씨ᄋᆞᆯ사상 강의와 근현대사를 사셨던 스승님들의 삶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나만의 방식이 가장 쉽고 간단하고 빠르고 좋은 것이라 생각하던 것을 버리고 조금은 더디더라도 복잡하더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내가 익숙했던 세상의 방식, 지식, 상식들을 뒤집고 새로운 방향과 지혜를 익혀가고 있습니다.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은 그 은총의 시작이었습니다. 함께 사건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해석이 일어납니다. 무척 신기합니다. 갑자기 확 바뀌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변화해가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그 변화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만난 씨알사상은 쉽고도 명쾌합니다. 철학적 심오함이 있지만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고, 신앙적 깊이가 있지만 교리적이지 않습니다. 구체적 삶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 때 씨알로서 주체적이고 전체적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썩어질 것을 향해서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창조적으로 구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조한아 | 몸과 마음을 낮추고 닦는 시기, 매일 저녁 앞치마를 두르고 마을밥상을 지키며 마을사람들에게 밝은 웃음을 선사하고 다시 살아갈 기운을 얻고 있습니다.
 

 

 
 

 

 

박재순  p994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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