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순(朴在淳 1950~), 스스로 쓴 짧은 전기

박재순l승인2017.04.10l수정2017.08.2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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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순(朴在淳 1950~)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선화초등학교, 한밭중학교,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철학과를 마친 후 한신대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3년 봄에 함석헌 선생을 만나서 성경과 동양고전을 배우며 씨ᄋᆞᆯ사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한국신학연구소 번역실장으로 일했다.(1980~1985) 한신대와 성공회대에서 연구교수와 겸임교수로 1992년에서 2006년쯤까지 가르쳤다. 씨ᄋᆞᆯ사상연구회 초대회장(2002~2007), 씨ᄋᆞᆯ재단 상임이사(2007~2014), 씨ᄋᆞᆯ사상연구소장(2007~)

서울대 기독학생회와 교회청년협의회 활동으로 1973~4년경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적극적으로 조직 활동에 참여하지는 못했다. 1973년 12월에 일본대사관 안에서 서울대기독학생회원들과 시위를 했고 서울의 민주화운동 유인물을 대전의 학생들에게 전하면서 구속되었다. 1974년 3월말에 체포되어 대전 대공분실에서 1달 이상 조사를 받은 후 서울구치소에서 석 달쯤 있었다. 그 때 같은 사동에 김지하, 김경남, 이원희 등이 함께 있었다.

 

내가 있던 감방의 왼쪽 옆의 옆방에는 인혁당사건으로 들어온 하재완선생이 있었다. 하선생은 목소리가 많이 쉬어 있었는데 김지하 시인이 언론사 데스크를 통해 들었다며 사형은 없을 것이라고 하선생을 위로하기도 했다. 8월초에 내가 먼저 나가게 되었을 때 하선생이 내게 쪽지를 전해 주었다. 나는 그 쪽지를 내복 틈에 숨겨서 가지고 나왔다. 쪽지 내용은 별 것이 없고 친척에게 전화를 해서 한국역사를 크게 볼 수 있는 책들을 넣어달라는 부탁이었다. 대전 집으로 내려오면서 공중전화로 하선생의 친척에게 전화를 했으나 나를 불신한 탓인지 전화를 받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부탁의 말만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해 봄 황사가 아주 심하던 날(4월 9일)에 하선생은 인혁당사람들과 함께 사형을 당했다.

 

기독학생회, 교회청년협의회, 신촌 함석헌 선생공부모임 등에서 최민화, 이광일, 신대균을 알게 되었고 서울구치소에서 수사 받으러 오 갈 때 이철 선배도 만날 수 있었다. 민청학련 때 나를 체포하고 수사했던 대머리 형사는 1981년 한울회 사건 때도 나를 수사하였다. 이 형사는 나에게 온정을 보였으나 상황을 바꾸지는 못했다.

나는 평생 민주생활철학인 씨ᄋᆞᆯ사상을 연구하고 알리는 일에 힘써왔다. 안창호와 이승훈, 유영모와 함석헌의 정신과 사상을 연구하면서 한국근현대의 민주정신과 사상으로서 씨ᄋᆞᆯ사상을 정립하고 알리려 한다. 중요한 저서로는 씨ᄋᆞᆯ사상, 다석 유영모,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 생명의 길 사람의 길, 삼일운동의 정신과 철학이 있다.


박재순  p994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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