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세계와 씨ᄋᆞᆯ의 연대

박재순l승인2018.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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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세계

 

땅의 물질세계는 쪼개고 가를 수 있으나 생명과 정신의 세계는 쪼개고 가를 수 없다. 생명과 정신의 근원과 목적인 하늘(하나님)은 한없이 깊고 크지만 가를 수 없고 쪼갤 수 없는 온전한 하나다. 정신 속에서 통일된 초점에 이른 것이 ‘나’(주체, 인격)이고 안팎에서 하나로 이어지고 통한 것이 생명이다. 생명은 내적 통일을 이루면서 하늘의 하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고, 정신은 하나(하늘)에 이르고 하나를 이루고 하나가 되자는 것이다. 생명은 하늘을 품은 것이고 인간은 하늘과 땅을 하나로 아우른 것이다.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에 곧게 서서 하늘과 땅과 인간의 합일에 이르고 하나를 이룬 존재다.(人中天地一, 천부경) 하늘(하나님)의 뜻은 우주, 자연생명, 인간이 모두 하나로 되게 하는 것이다.(요한17,22) 하나님은 하나이고 하나로 이끄는 이다. 하나 됨 속에 하나님이 있다.

생명은 물질 안에서 물질을 초월한 것이다. 생명진화는 땅의 물질에서 생명으로 생명에서 감정과 의식에로 감정과 의식에서 얼과 뜻에로 얼과 뜻에서 하나님을 향해 진화 발전해왔다. 생명의 진화와 인간의 정신화는 물질, 흙, 몸, 기계를 생명화, 정신화, 영화하는 것이다. 생명진화는 물질의 다양함과 서로 다름 속에서 하늘의 하나 됨에 이르자는 것이다. 물질은 서로 다른 것이며 다양한 것이다. 물질과 의식을 유기체적으로 통합한 생명은 서로 다른 다양함 속에서 하나를 이룬 것이다. 물질에 대한 욕망과 집착은 갈등과 대립, 모순과 분열, 적대와 투쟁을 낳는다. 물질 속에서 물질적인 몸을 가지고 사는 생명은 살기 위해서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과 투쟁 속에 사는 존재다. 생명과 인간은 물질 없이 살 수 없고, 다른 생명을 잡아먹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연약하고 이기적인 존재다. 땅에 발을 딛고 물질에 의지해서 사는 인간은 덧없고 약한 존재다. 그러나 인간은 속에 하늘 생명의 거룩한 씨ᄋᆞᆯ을 품은 존재다. 먹고 먹히는 가련한 현실 속에서 물질에 매인 삶 속에서 인간은 하늘의 임,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하나님을 드러내고 실현하는 존재다. 사람은 속에 하늘(하나님)을 품고 모시고 기리고 찬미하는 존재다.

하늘과 땅 사이에 곧게 선 사람은 하늘과 땅과 사람(생명)의 세 차원을 아우른 존재이며 몸, 맘, 얼의 세 겹으로 이루어진 존재다. 사람은 속에 몸과 맘과 얼이 하나로 되는 세계를 지녔고 밖에 물질 우주와 자연생명과 정신이 하나로 되는 세계를 가졌다. 사람의 본분과 사명은 안으로 내적 주체의 통일을 이루고 밖으로 하늘(영)과 땅(물질)과 사람(생명, 사회)의 하나 됨에 이르는 것이다. 인간은 감성과 이성과 영성을 지녔다. 감각은 부분과 표면을 지각할 뿐이고 이성은 가르고 쪼개서 부분을 이해할 뿐이다. 감각과 이성은 하나를 인식하고 이해할 수 없고 하나에 이를 수 없고 하나가 될 수 없다. 얼과 혼의 사랑만이 하나를 느끼고 알고 하나에 이르고 하나를 이룰 수 있다. 온전한 하나의 삶을 살려면 몸의 감성과 맘의 이성과 얼의 영성을 모두 살려야 한다. 감성을 살리면 예술이 나오고 이성을 살리면 철학이 나오고 영성을 살리면 종교가 나온다. 감성과 이성과 영성이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 몸은 성하고 맘은 놓이고 얼과 뜻은 높이 솟아올라야 한다. 몸의 물질과 감성 세계도 스스로 하는 주체이고 전체다. 맘의 심성과 이성의 세계도 스스로 하는 주체이고 전체다. 얼의 영성도 스스로 하는 주체이고 전체다. 몸, 맘, 얼은 저마다 무한한 깊이와 무한한 차원을 지니고 있다.

하늘의 하나 됨은 모든 것이 주체와 전체로서 온전히 실현되고 완성되는 방식으로 모든 것의 주체와 전체가 온전히 하나로 되는 것이다. 사람의 몸, 맘, 얼이 저마다 주체와 전체로서 저대로 온전히 실현되고 완성되는 방식으로 전체의 하나 됨에 이르러야 한다. 물질 우주와 인공지능과 생명과 정신과 얼이 저마다 풍부하고 온전하게 실현되고 완성되는 방식으로 큰 하나 됨에 이르러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저마다 저대로 실현되고 완성되는 방식으로 전체의 큰 하나 됨에 이르게 하는 이다. 하나님은 주체와 전체를 하나 되게 하는 참된 주체이고 참된 전체다. 사람이 속의 속에서 하나님께 이르면 속의 주체와 밖의 전체가 하나로 된다. 나의 속의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것이 가장 깊고 진실한 깨달음이다. 나의 밖에서 만물과 다른 인간들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것이 가장 크고 놀라운 깨달음이다. 역사와 사회의 바닥에서 고통당하며 신음하는 민중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내가 민중과 하나임을 체험하는 것이 가장 깊고 크고 진실한 깨달음(究竟覺)이다.

한민족은 하늘을 열고 나라를 세웠고 하늘을 우러르고 받드는 종교문화전통을 이어왔다. 한민족의 ‘한’은 하늘, 하나님, 큰 하나를 뜻하는 말이다. 한민족은 스스로 ‘하늘, 하나님, 큰 하나’를 지키고 이루고 드러내고 실현하는 겨레가 되기를 염원하였다. 큰 하나를 이루고 큰 하나가 되자는 것이 한민족의 사명이고 염원이다. 크게 하나로 되는 것을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한민족은 인정이 많고 서로 통하는 것을 고마워하고 즐거워했다. 한민족은 서로 통하는 맘(通心)을 가진 민족이다. 통하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하므로 크게 하나로 통하는 세상을 갈구하였다.

한민족의 근현대는 동서고금의 정신과 문화가 하나로 합류하는 때다. 근현대의 한국은 동양과 서양 정신문화의 큰 강물이 하나로 만나는 두물 머리다. 동양의 정신문화와 서양의 정신문화가 깊이 만나서 하나의 세계를 열고 이루어가는 자리가 한반도였다. 동양의 정신문화와 서양의 정신문화가 가장 깊고 풍부하게 만나고 하나로 통합되었다. 한민족은 종교와 철학에서 정신과 문화에서 하나의 세계를 열고 하나의 세계를 이룰 사명과 책임을 가졌다.

 

씨ᄋᆞᆯ의 연대

 

사람은 우주와 자연생명과 인류역사의 씨ᄋᆞᆯ이다. 사람 속에 우주와 자연생명과 인류역사가 압축되어 있고 살아 있다. 사람은 우주와 자연생명과 인류를 하나로 통합한 존재다. 사람은 한없이 깊고 높고 큰 생명과 정신의 세계를 속에 가졌다. 사람 속에 사람 뒤에 사람 위에 사람 사이에 하나님(하나이신 임)이 계시다. 사람은 하나님을 품은 존재이고 하나님을 모시고 우러르고 그리워하고 받드는 존재다. 사람은 하나님을 드러내고 실현하고 찬미하는 존재다.

씨ᄋᆞᆯ인 사람은 속에 하나를 품고 하나를 이루는 존재다. 씨ᄋᆞᆯ의 ‘ᄋᆞᆯ’에서 ㆍ는 내적 초월의 하나를 나타내고 ㅇ는 우주적 초월의 하나를 나타낸다. 씨ᄋᆞᆯ은 속에 수없는 많음을 품고 낳아서 많음과 다름 속에서 참 하나에 이른다. 씨ᄋᆞᆯ의 생명은 다양한 많음을 낳고 다양한 만물의 서로 다름 속에서 참된 하나를 이루자는 것이다. 많음과 서로 다름은 하나를 이루는 기회이고 계기다. 서로 다름과 많음은 보다 깊고 풍성한 하나 됨을 위한 기회이고 계기라는 점에서 축복이고 은혜다.

하나를 품고 모신 씨ᄋᆞᆯ은 씨ᄋᆞᆯ들 사이에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서로 다름과 많음 속에서 서로 하나 됨을 이루고 하나 됨을 심화하고 확장해야 한다. 사랑과 정직은 하나 됨의 조건이고 목적이다. 내면의 하나 됨에서 사랑과 정직이 나오고 사랑과 정직이 안과 밖의 하나 됨을 이룬다. 속에 내적 통일을 이룬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고 정직할 수 있다. 사랑하는 정직한 사람만이 하나를 이룰 수 있다. 하나에서 나와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 생명이고 정신이다. 씨ᄋᆞᆯ의 생명과 정신은 안과 밖에서 스스로 하는 주체와 전체의 하나 됨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주체와 전체의 하나 됨이 참이고, 아름다움이고, 좋음이다. 씨ᄋᆞᆯ의 생명과 정신이 하나 됨에 이른 것이 정의이고 평화다. 씨ᄋᆞᆯ의 주체(개인)와 전체(나라)가 하나로 된 것이 민주다. 민주는 씨ᄋᆞᆯ들이 서로 주체로서 협동하여 하나로 되는 것이다. 주체와 전체의 하나 됨이 참, 좋음, 아름다움의 마루이고 민주, 정의, 평화의 꼭지다.

씨ᄋᆞᆯ의 생명은 속에 하나를 품었고 하나 되는 근거와 힘과 뜻을 지녔다. 씨ᄋᆞᆯ은 연대의 힘과 근거와 목적을 속에 지니고 있다. 다른 씨ᄋᆞᆯ과 연결이 끊어져도 속에 연대의 힘과 끈을 지니고 있다. 외적인 관계와 연결이 끊어져도 씨ᄋᆞᆯ의 속에는 연대의 끈과 힘이 있다. 씨ᄋᆞᆯ이 속에 품고 있는 생명과 정신, 사랑과 정의, 정직과 진리, 얼과 뜻, 하나님은 계산할 수 없고 끊을 수 없고 쪼갤 수 없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자본의 세계화

 

자본과 인공지능과 인터넷은 물질(기계)과 정보(데이타) 중심의 세계화를 실현하고 있다. 자본과 인공지능과 인터넷은 인간을 하나의 세계 속으로 끌어넣는다. 자본과 계산 기계(컴퓨터, 인공지능)와 인터넷의 세계적 연대는 물질(돈)과 기계와 정보에 의존하는 연대다. 이런 연대는 인간의 생명과 정신, 얼과 뜻, 공동체와 하나님을 물질과 기계 아래로 끌어내림으로써 위축시키고 파괴한다.

컴퓨터, 인공지능은 계산기다. 물질과 산술의 세계는 계산할 수 있고 쪼갤 수 있다. 자본, 기계, 물질은 계산할 수 있고 쪼갤 수 있는 것이다. 계산하고 쪼개는 산술계산은 합리성과 효율성을 추구하고 수적 양적 확대와 확장을 추구한다. 인공지능의 계산적 합리성과 인과적 효율성은 봉건적 잔재를 청산하고, 미신적 운명론적 관념과 생각을 씻어버릴 수 있다. 물질과 기계의 계산과 인과관계는 정확하고 정직하다. 바르고 옳게 살려면 계산을 바로 하고 인과관계를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숫자적 관념적 합리성과 물질적 기계적 효율성에 매몰되면 큰 하나를 지향하는 인간의 높은 뜻과 정신은 사라지고, 하나님은 제거된다. 세계의 하나 됨은 깨지고 숫자적 다수성으로 쪼개지고 갈라진다. 돈의 계산성은 생명, 정신의 공동체, 통일, 하나 됨을 파괴한다. 인간의 생명과 영혼은 통계 숫자와 정보(데이터)로 해체된다.

인공지능과 기업(자본)의 논리는 계산적 논리로서 같고 둘은 쉽게 결합된다. 산술계산의 세계에는 생명, 감정, 정신, 하나님이 없다. 인공지능(기계)과 자본(기업)은 계산하고 쪼갬으로써 합리, 효율을 추구하고 이윤과 자본의 무한한 확장을 이루려 한다. 이것은 씨ᄋᆞᆯ의 연대(자유와 평등의 공동체)를 깨트린다. 자본과 인공지능은 몸, 생명, 정신, 영, 신을 산술계산의 세계로 축소 환원시킨다. 자본과 인공지능의 연대와 계산 앞에서 생명과 인간은 계산과 이윤추구의 대상일 뿐이다. 자본과 인공지능의 결합이 강화되면서 빈부격차가 급격히 확대되고 인류 절대 다수의 빈곤화가 급속히 진행된다. 오늘날 0.1%의 부자가 하위 50%(38억 명)의 부와 맞먹는 부를 차지하고 있다.

계산할 수 없는 생명의 깊이와 높이를 가지고 하나님을 모신 사람은 돈과 기계(인공지능)보다 한없이 깊고 높고 존귀한 존재다. 씨ᄋᆞᆯ 인간이 인공지능, 기계의 창조자이고 주인이다. 인공지능이 씨ᄋᆞᆯ의 공동체적 연대를 존중하고 지키고 섬기게 해야 한다. 인공지능과 기계는 창조자인 인간의 정신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산술계산은 정직하고 정확한 것이다. 인공지능과 기계도 그렇다. 인간의 악한 본성이 인공지능과 기계를 지배하면 인공지능과 기계는 악의 도구가 된다. 탐욕과 허영에 빠진 인간은 기계와 자본의 종이 되기 쉽다.

순수한 감성과 맑은 지성과 높은 영성을 지닌 인간은 정직하고 충실한 계산 기계(인공지능)의 어질고 슬기롭고 거룩한 창조자와 주인이 될 수 있다. 순수한 감성과 맑은 지성과 높은 영성이 투영된 인공지능과 기계는 참과 좋음과 아름다움을 실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물질과 기계의 주인인 씨ᄋᆞᆯ은 인공지능과 산업자본 위에서 씨ᄋᆞᆯ의 공동체적 연대를 드러내는 생명과 정신의 문명세계를 지을 수 있다. 요즈음 새롭게 등장한 블록체인 기술은 참여자들의 관계와 거래내용을 투명하고 흠결 없고 신속하게 제시하는 기술이다. 모든 정보를 정직하고 온전하고 신속하게 제시하는 이런 기술을 제대로 사용하면 인간들의 연대를 민주적이고 안전하게 보장할 수 있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계산능력은 상황과 조건을 조정, 통제, 관리할 수 있고 자료, 정보를 정리 분석하고 심층학습을 통해 자신의 분석 판단 능력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인공지능의 지적 능력은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인공지능은 사물과 사물, 인간과 사물, 인간과 인간을 연결할 수 있다. 인공지능과 인터넷은 연결망을 세계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 이런 연결은 외적 연결이라 연결이 끊어지면 관계는 곧 끊어진다. 그러나 씨ᄋᆞᆯ은 속에 연결의 끈, 근거, 힘을 지니고 있으므로, 외적 연결이 끊어져도 내적 깊이에서 서로 통하고 연결될 수 있다. 씨ᄋᆞᆯ은 속에 하늘, 하나님을 모시고 있으므로 속에 ‘하나의 세계’가 있다.

 

돈과 기계의 연대를 넘어선 씨ᄋᆞᆯ의 연대

 

씨ᄋᆞᆯ은 계산할 수 없는 것, 사고 팔 수 없는 것을 지키고 살리고 늘리고 높여야 한다. 기계와 물질(돈)보다 소중하고 귀한 것을 지키고 나눠야 씨ᄋᆞᆯ의 공동체적 연대가 생겨난다. 인간의 생명과 정신, 뜻과 목적은 돈과 기계, 계산과 물질, 지식과 정보(데이터)보다 한없이 높고 귀하다. 돈과 물질, 기계의 연대는 씨ᄋᆞᆯ의 연대를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돈과 기계는 생명과 정신을 위한 수단과 도구다. 생명과 인간의 뜻과 목적을 위해 돈과 기계를 바로 써야 씨ᄋᆞᆯ의 공동체적 연대가 생긴다.

씨ᄋᆞᆯ은 저마다 신을 모셨고 우주와 진화역사를 지녔으며 스스로 하는 얼과 혼의 자유를 지닌 존귀한 존재다. 씨ᄋᆞᆯ은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모름을 지켜야 한다. 생각, 욕구, 감정의 다름을 존중하고 스스로 하도록 거리를 두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신 사람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 씨ᄋᆞᆯ들은 서로 거리를 두고 맑은 지성으로 대해야 한다. 하나님, 하나는 감각과 이성으로 알 수 없는 것, 모르는 것이다. 모래알 하나 들꽃 하나도 그 깊이와 전체를 다 알 수 없다. 따라서 누구를 무엇을 “다 알았다.”고 하면 망령된 것이고 잘못된 것이며 모르는 것이다. 씨ᄋᆞᆯ 속에 하나(하나님)가 있음을 알아주고 존중하는 것은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모름을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신 씨ᄋᆞᆯ을 아는 것은 모름을 아는 것이다. 씨ᄋᆞᆯ을 알아주는 것은 몰라주는 것이다. 공자가 말했듯이 앎과 모름을 구분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

네 것, 내 것 없는 가족, 형제, 친구 관계도 완전한 하나 됨은 아니다. 하나님만이 완전한 하나 됨에 이를 수 있다. 나 자신도 형제, 가족도 친구, 동지도 서로 다름과 모름을 지키고 하나 됨을 추구해야 한다. 네 속에서 하나님을 보고 내 속에서 하나님을 봄으로써 네 속에서 나를 보고 내 속에서 너를 보는 지경까지 가야 한다. 그러나 너는 너답고 나는 나답게 서로 주체로서 곧고 자유롭게 살도록 서로 격려하고 지켜야 한다. 내가 너를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면 너는 하나님의 씨ᄋᆞᆯ로서의 존엄과 주체를 잃고 나의 감각적 이성적 판단과 정죄의 도구와 대상이 된다. 내가 너를 다 안다고 생각하면 너는 씨ᄋᆞᆯ이 아니라 한갓 물건과 대상으로 전락한다. 아무도 씨ᄋᆞᆯ의 삶과 생각을 대신할 수 없다. 따라서 씨ᄋᆞᆯ은 씨ᄋᆞᆯ을 정죄하고 판단하지 않는다. 씨ᄋᆞᆯ이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도록 믿고 격려하며 기다릴 뿐이다. 거리를 두고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모름을 지키는 것이 하나의 세계를 열어가는 씨ᄋᆞᆯ의 사랑이고 사귐이며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가는 연대의 시작이다.

 

자치와 협동의 새 공동체를 만드는 새 종교와 새 철학의 운동

 

하나의 세계를 믿고 씨ᄋᆞᆯ의 연대를 만들어가는 것은 새 종교를 가지고 새로운 삶과 생각의 꿈틀거림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찾고 만나고 드러내고 찬미하는 데서 하나의 세계와 씨ᄋᆞᆯ의 연대도 드러나고 실현된다. 하나님은 하나이신 임이고 하나 그 자체다. 나의 속의 속에서 하나를 믿고 찾고 발견하고 만나고 체험하고 실현하는 데서 하나의 세계가 시작되고 씨ᄋᆞᆯ의 연대가 이루어진다. 나의 속의 속에서 하나님께 이르면 하나님 안에서 안과 밖이 하나로 되는 큰 세계가 열린다.

나의 속의 속에서 나의 밖의 밖에서 하나를 믿고 찾고 체험하고 실현하여 씨ᄋᆞᆯ의 연대를 심화하고 확장하는 일이 씨ᄋᆞᆯ사상, 씨ᄋᆞᆯ철학, 씨ᄋᆞᆯ종교의 일이다. 씨ᄋᆞᆯ사상은 참된 주체와 참된 전체인 하나님을 믿고 찾고 발견하고 체험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참 나를 찾고 참 나와 나라(인류, 우주)가 하나임을 깨닫고 참 나로 사는 것이다. 참 나를 세우고 높이는 일이 나라를 세우고 높이는 일이다. 씨ᄋᆞᆯ사상은 나의 속의 속에서 나의 밖의 밖에서 하나님, 하늘, 무한 영원을 생각하는 것이다. 영원 무한한 하나이신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내 속의 속에, 씨ᄋᆞᆯ과 씨ᄋᆞᆯ 사이에 하나님이 오시고 하나님이 깃들고 충만하게 하는 것이다. 나의 몸과 맘과 얼속에 하나님이 가득 차고 뚜렷하게 함으로써 씨ᄋᆞᆯ은 알차고 옹글게 되고 사랑과 진리, 정의와 평화의 꽃과 열매를 맺는다.

씨ᄋᆞᆯ들이 모여서 묵상하고 생각함으로써 하나의 세계가 뚜렷해지고 씨ᄋᆞᆯ의 연대가 깊고 든든하고 더욱 크게 확장된다. 씨ᄋᆞᆯ들이 함께 모여서 공부하고 대화하고 생각과 힘과 뜻을 모음으로써 하나의 세계는 더욱 크고 깊어지며 씨ᄋᆞᆯ의 연대는 든든하고 힘차게 자라고 확장된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지금보다 훨씬 발달하면 인간은 강요된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다. 인간이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노동, 산업생산을 위한 강제노동에서 해방되면 인간은 몸을 성하게 하고 맘이 놓이게 하고 얼과 뜻을 높이고 힘차게 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아무리 발달해도 생명과 정신을 가질 수는 없고 철학과 종교에 힘쓸 수 없고 성현이 될 수 없다. 인간이 노동에서 자유로워지면 인간은 철학과 종교에 전적으로 헌신할 수 있고 철학하는 씨ᄋᆞᆯ이 될 수 있다.

한 개인과 집단의 의지와 계획과 힘으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 수 없고 씨ᄋᆞᆯ의 연대를 심화 확장할 수 없다. 어느 개인이나 집단이 멋대로 추진하는 통일과 연대는 씨ᄋᆞᆯ의 주체와 전체를 억압하고 해치는 것이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고 하나님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것이며 씨ᄋᆞᆯ의 공동체적 연대를 파괴하는 것이다. 생명과 정신의 참된 하나 됨은 모든 개인과 집단이 저마다 하나(하나님)로 돌아감으로써 서로 주체가 실현되고 완성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전체의 통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인간이 하는 일은 하나님(하나)께로 돌아가는 일(歸一)이다. 저마다 하나로 돌아가고 하나를 높이 드러내고 실현할 때 전체의 하나 됨(통일)과 씨ᄋᆞᆯ의 연대가 심화되고 확장된다.

따라서 하나의 세계와 씨ᄋᆞᆯ의 연대는 자치와 협동의 작은 생활공동체를 통해서 실현되고 완성된다. 씨ᄋᆞᆯ은 가까이 서로 만나고 사귀는 사람들 사이에 서로 주체로서 서로 연대하는 자치와 협동의 민주생활영성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한다. 상생과 공존의 작은 공동체를 통해서 씨ᄋᆞᆯ은 생명을 살리고 정신을 높여야 한다. 생명을 살리고 정신을 높임으로써 씨ᄋᆞᆯ은 몸, 맘, 얼을 통일하고, 자본과 인공지능(기계)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몸, 맘, 얼을 통일하고 자본과 인공지능의 주인이 될 때 씨ᄋᆞᆯ은 민주사회와 나라를 만들고, 우주와 자연생명과 인간을 아우르는 큰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갈 수 있다.


박재순  p994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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