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근본과 인간교육의 백년대계를 세우기 위하여-안창호의 인간교육철학을 중심으로

박재순l승인2018.11.27l수정2018.11.27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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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나라의 근본과 인간교육

1) 적폐의 청산과 인간교육의 필요

2) 민주공화와 민족통일을 위한 인간교육(민주시민교육)은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2. 나라의 근본을 세우고 인간 교육의 귀감이 된 안창호

1) 나라의 근본을 세운 안창호

민주공화와 민족통일의 길을 연 안창호

삼일혁명의 정신과 철학을 형성하고 실천한 안창호

임시정부를 낳은 어머니 안창호

2) 교육독립운동과 인간교육의 귀감인 안창호

3) 안창호, 이승훈, 유영모, 함석헌으로 이어지는 정신과 철학의 계보를 열다.

 

3. 안창호의 인간교육철학: 나는 어떻게 민주시민이 되는가?

정신과 철학의 근본적 변화(paradigm shift): 새로운 기축시대로의 전환

 

1) 안창호의 인간교육철학

ㄱ. 도산의 진리 체험과 교육철학의 새로움

스승 도산의 깨달음과 민중체험

도산의 교육사상과 철학의 새로움

ㄴ. 개조의 필요와 철학

인간의 자기개조와 해방

개조의 필요와 철학

인간의 본성과 자아는 개조와 혁신 속에 있다

 

2) 인격개조와 민주시민의 형성 : 나는 어떻게 민주시민이 되는가?

ㄱ. 인격개조의 내용과 방법

환경과 나의 일치: 환경과 강산의 개조

나와 나라의 일치를 위한 개조: 나와 민족의 개조

-국가는 민의 생명공동체

-나의 습관과 능력의 개조

-몸을 고치고 가정을 고치라

나와 민중의 일치: 고난 받는 민중이 사랑으로 서로 돕고 구한다(患難相濟)

 

3) 인간의 자기 개조와 교육의 방법

ㄱ. 개조의 방법: 기쁨, 사랑, 희망을 가진 나!

ㄴ.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수양

 

4. 나라의 근본을 세우는 인간교육, 어떻게 할까?

 

 

나라의 근본과 인간교육의 백년대계를 세우기 위하여

-안창호의 인간교육철학을 중심으로

 

민주국가에서 나라의 근본은 국민 곧 인간이다. 나라의 근본을 바로 세우는 것은 국민인 인간의 삶과 정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인간교육은 인간의 삶과 정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도산 안창호는 허물어진 나라의 근본을 바로 세우기 위해 평생 민족의 자주독립과 통일을 위해 헌신했고 인간교육의 백년대계를 세우기 위해 흥사단을 조직하였다.

 

1. 나라의 근본과 인간교육

 

1) 적폐의 청산과 인간교육의 필요

 

오늘 정부는 나라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으며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드러나는 적폐를 청산하는 것은 그 가지와 잎을 잘라내는 것과 같아서 적폐의 뿌리를 뽑지는 못한다. 적폐의 뿌리가 깊이 박혀 있는 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적폐의 가지와 잎이 무성하게 자라날 것이다. 적폐의 뿌리는 무엇인가? 나라의 근본인 헌법정신과 이념을 짓밟고 훼손하는 것이다. 이 나라의 헌법정신과 이념은 헌법전문에 쓰여 있는 대로 삼일운동과 임시정부의 정신과 이념이다. 삼일운동과 임시정부의 이념과 정신은 온 국민이 나라의 주인과 주체가 되는 민주공화의 이념이고 온 민족이 하나로 떨쳐 일어나는 민족통일의 정신이다. 민주공화와 민족통일의 이념과 정신은 삼일운동과 임시정부 그리고 촛불혁명에 사무친 이념과 정신이다. 적폐의 뿌리를 뽑으려면 나라의 근본을 바로 세워야 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듯이 근본을 바로 세우면 도가 살아난다(本立道生). 나라의 근본을 바로 세우면 적폐가 사라지고 나라와 국민의 바른 정신과 기운이 살아날 것이다.

 

나라의 근본인 민주공화와 민족통일의 정신이 한국사회에서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삼일혁명, 4·19민주혁명, 촛불혁명을 통해 일시적으로 민주공화와 민족통일의 정신이 찬란하고 장엄하게 타오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일상생활과 정치 경제 교육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나라의 근본정신은 쇠퇴하고 말라가고 있다. 그렇게 된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경제성장에 매달린 한국사회는 돈과 기계와 경쟁에 매이게 되었다. 시장과 기업의 논리가 중요하지만 그 논리가 국가사회를 전적으로 지배하면 국민은 모두 돈과 기계와 경쟁에 내몰린다. 그러면 민주공화와 민족통일의 정신은 쇠퇴하고 소멸할 수밖에 없다. 둘째 유치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는 교육은 오랜 세월 입시경쟁과 주입식 지식교육에 머물렀다. 이런 교육을 계속하면 인간의 정신과 성품은 깊이와 품을 잃고 얕고 좁아진다. 그러면 당연히 민주공화와 민족통일의 정신도 약해지고 줄어든다.

 

한국사회가 돈과 기계와 경쟁에만 매달리고 경쟁교육과 지식 주입 교육만 한다면 나라의 근본을 바로 세울 수 없고 적폐의 뿌리를 뽑을 수 없다. 지역 자치를 위해서 민주시민의 생활공동체를 만들려고 해도 주민들이 서로 도우며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풀뿌리 자치는 실현될 수 없다. 적폐를 청산하고 나라의 근본을 바로 세우려면 민주공화와 민족통일의 정신과 이념을 가진 인간교육을 해야 한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어 인공지능과 로봇이 산업사회와 경제를 주도하면 인간의 삶은 계산적인 기계화와 자동화에 더욱 예속되고 민주정신과 통일정신은 약화되고 고갈될 것이다. 인간이 사회의 주인과 주체가 되는 민주정신과 이념은 약해지고 서로 돌보고 보호하며 더불어 사는 협동과 통일의 정신은 소멸할 것이다. 민주와 통일은 인간의 근본문제다. 인간은 삶의 주인과 주체로서 서로 돌보며 더불어 사는 존재다. 그렇게 살 때 인간은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 되고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한 존재가 된다. 민주공화와 민족통일의 이념과 정신을 확립하고 실현하는 것은 한국근현대의 이념과 정신을 실현하는 것이며 한반도와 동아시아와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2) 민주공화와 민족통일을 위한 인간교육(민주시민교육)은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덕력, 체력, 지력을 길러서 건전인격을 세우고 조직과 단체의 공고한 단결을 이룸으로써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이루려고 했던 안창호와 흥사단에게 인간교육은 곧 민주시민교육이었다.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민주시대의 인간교육은 타율적인 주입식 교육이 될 수 없다. 국민을 국가산업의 인력자원으로 보거나 국가의 병력자원으로 본 국가주의사회는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국가의 이념과 목적을 주입시키고 인력과 기능을 육성하는 교육을 추구했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과 주체인 민주국가에서 국가의 이념과 목적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서 사는 것이며 국민을 나라의 주권자로서 돌보고 보호하고 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국가의 국민교육은 국민이 국가의 주인과 주체가 되는 교육이고 국민교육은 국민의 자기 교육이 되어야 한다. 인간교육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스스로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하여, 스스로 자신이 참 인간이 되게 하고 스스로 참 인간이 되는 자기 교육이다.

그러나 인간의 자기 교육은 저절로 자연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자기 교육을 위해서는 인간과 역사, 국가와 세계에 대한 깊은 철학적 연구와 인간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대한 연구와 노력이 요구된다. 민주공화와 민족통일을 지향하는 인간교육은 고대와 중세의 철학과 종교의 가르침에 의존할 수도 없고 외국의 교육이론과 사상에 의존할 수도 없다. 내가 나로 되고 참 인간이 되는 인간교육, 민주와 통일을 실현하는 국민이 되는 국민교육은 ‘스스로 하고 스스로 되는’ 교육이므로 근본적으로 우리 역사와 우리 삶에서 그 교육의 정신과 철학, 목적과 방법을 찾아내고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인간교육, 민주교육은 기본적으로 스스로 하고 스스로 되는 자기 교육이므로 스스로 정신과 철학, 목적과 방법을 찾아내고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하여 가장 주체적이고 창조적이면서 세계 보편적인 정신과 가치를 지향하는 인간교육이 되어야 한다.

 

근현대 한국민족은 민주공화와 민족통일을 추구하고 실현하고 완성하기 위해 온갖 시련과 역경을 거쳐 왔다. 근현대 한국민족의 정신과 삶 속에 민주공화와 민족통일의 정신과 이념이 사무쳐 있다. 근현대 한국민족은 민주공화와 민족통일의 정신과 철학을 형성하고 실현하고 완성하려고 애를 써왔다. 삼일혁명, 임시정부, 4·19민주혁명, 6월 시민항쟁, 촛불혁명은 근현대 한국민족의 정신과 철학을 밝히 드러낸 것이다. 우리 민족이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이루려고 했는지 뚜렷이 보여준 것이다. 한국민족이 근현대의 역사에서 추구하고 이루려고 했던 민주공화와 민족통일의 정신과 철학은 헌법전문에서 밝힌 삼일혁명과 임시정부의 정신과 철학에서 가장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삼일혁명과 임시정부의 정신과 철학을 제대로 깊이 연구하면 한국민족과 헌법전문의 정신과 철학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2. 나라의 근본을 세우고 인간 교육의 귀감이 된 안창호

 

1) 나라의 근본을 세운 안창호

 

민주공화와 민족통일의 길을 연 안창호

 

나라가 망해가고 식민지가 되는 과정에서 나라의 자주독립과 민족의 통일을 위한 운동에 안창호는 누구보다 더 순수하고 치열하고 흔들림 없이 헌신하고 희생하였다. 그는 조선왕조에서 소외와 차별을 받던 평안도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한학과 유교경전을 배우고, 17세 때 서울 선교사 학교에서 기독교정신과 과학을 배웠다. 유교를 통해 몸과 맘, 말과 행동을 바르게 하는 법을 익혔다. 기독교에서 모든 책임과 잘못을 자기에게 돌리고 자기를 변화시키고 겸허하게 섬기는 심정과 자세를 배웠다. 과학을 배움으로써 그는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으며 좋은 원인을 만들면 좋은 결과에 이른다는 합리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 참여하여 민주정신과 원리를 배우고 민중을 깨워 일으켜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이루는 운동에 앞장섰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이끈 서재필과 윤치호는 양반가문의 자제였고 관직을 가졌고 미국에서 유학한 지식인 명망가였다. 이들은 오만한 지식인 엘리트로서 서구문명을 목표와 표준으로 삼고 한국 민중을 불신하고 멸시했다. 이들은 민중 계몽에 힘썼지만 민중의 무지와 무기력, 게으름과 더러움을 혐오하였다. 안창호는 서재필과 윤치호에게서 민주주의와 민주적 토론 법을 배우고, 서구문명의 이념과 원리를 배웠다. 그러나 이들과는 달리 안창호는 민중을 깊이 신뢰하고 사랑하고 존중하였다. 그가 맨 처음 평양의 쾌재정에서 청중 앞에 섰을 때 그의 나이는 만 20세가 되지 못했다. 그 자신이 가난한 평민의 아들이었고 내세울 권위와 명망이 없었다. 그의 고향인 평양에서 연설할 때 청중은 그의 부모나 친척과도 같은 고향의 어른들이었다. 그가 높은 관리들과 어른들인 청중 앞에서 사회 권력층의 불의와 부정, 억압과 착취를 비판하고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어가자고 외쳤을 때, 청중은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고 환호하였으며 관리들도 함께 박수를 쳤다. 그는 연설을 통해서 부모와 같은 청중과 하나로 되는 감격을 체험하였고 민중에게 엄청난 힘과 지혜가 숨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쾌재정의 연설에서 민중과 하나로 되는 깊은 경험을 한 안창호는 민중을 신뢰하고 사랑하면서 민중 속으로 들어가 민중과 함께 일어나는 운동을 벌였다. 1902년에 미국으로 유학 간 안창호는 직접 노동을 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갔다. 길거리에서 상투 잡고 싸우는 한인동포들을 보고 안창호는 유학 공부를 중단하고서 한인노동자들을 교육 훈련 조직하는 일에 헌신하였다. 그리하여 1905년에 한인동포들의 ‘보호하고 단합함’을 강령으로 내세운 공립협회(共立協會)를 조직하였다. 그는 민이 사랑으로 서로 ‘보호하고 단합함’이 문명부강의 뿌리와 씨라고 하였다. 민이 사랑으로 서로 보호하고 협동하고 단합하는 것이 민주주의와 문명의 기본 토대이고 뿌리라고 본 것은 그가 철저한 민주공화의 정신에 이른 것을 말해준다.

민이 서로 보호하고 단합하는 것이 안창호에게는 인생과 역사에서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하고 중요한 일이었다. 그는 미국과 멕시코에서 노예처럼 살던 한인노동자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깨워 일으켜 서로 보호하고 협동하는 아름다운 공동체 사회를 만들었다. 한인노동자들은 자존감을 가지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신뢰와 존경을 받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안창호는 농장주(기업주)들과 지역사회 그리고 그 지역 유지들로부터 신뢰와 공감과 찬양을 받는 한인공동체 사회를 만들었다. 그가 일하는 곳에서는 민주공화의 세계가 열렸다. 그가 세운 공립협회는 1908년에는 미주, 하와이, 멕시코, 한국, 중국, 블라디보스톡에 수많은 지회를 두게 되었다. 공립협회를 확대 개편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가 미국에서는 일제를 제쳐놓고 한국정부의 구실을 하게 되었으며 상해 임시정부를 후원하는 주요기관이 되었다.

일제가 한국의 주권을 빼앗은 을사늑약이 일어나자 안창호는 미국에서 동지들과 ‘대한신민회 취지서’를 작성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신민회를 조직하고 교육독립운동을 일으켰다. 그가 조직한 신민회는 최초로 민주공화정을 정치이념으로 제시한 단체였다. 그는 신민회를 통해서 민족교육운동을 벌이고 독립전쟁을 준비하였다. 그는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나 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서 독립전쟁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독립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민주적 자각이 일어나고 민족 전체가 하나로 단결하고 통일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에게 민족통일은 독립운동을 위한 수단과 방법이면서 독립운동의 목적이었다. 민족이 단결하고 통일되어야 힘을 모아서 독립운동을 하고 독립전쟁을 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통일된 민족만이 자주독립의 자격을 가지며 자주 독립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독립운동의 목적은 민주적인 통일국가를 이루는 것이었다. 멀지 않은 날에 일제가 미국, 중국, 러시아와 전쟁을 하게 될 것이고 그 때 한국민족은 자주독립의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그는 예견하였다. 그러나 그런 기회가 오더라도 한국민족이 단합하고 통일되어 있지 않으면 자주 독립을 얻지 못할 것이며 또 잠시 독립을 얻더라도 오래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그는 독립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줄기차게 민족의 단결과 통일을 위해 혼신을 다해서 헌신하고 노력하였다.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서 안창호는 먼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깨워 일으켜야 한다고 보았다. 한국민족을 깨워 일으켜 통일된 의식을 갖도록 하려고 안창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민족을 깨워 일으키는 연설을 하였다. 그는 무엇보다도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서 민족을 자각시키고 통일시키는 애국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안창호는 충군애국을 고취하려고 윤치호가 지은 황실찬미가인 무궁화가(無窮花歌)를 바탕으로 현행 애국가1~4절을 새로 지었고, 무궁화가의 후렴을 그대로 애국가에서도 사용했다. 애국가 후렴에 나오는 무궁화를 나라와 민족을 상징하는 꽃으로 보고 무궁화처럼 우리 민족의 생명력은 무궁하다고 역설하였다. 1907년 2월부터 1910년 4월까지 안창호는 대성학교를 세워 청년학생들을 기르고 청년학우회를 조직하여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주독립과 민족통일의 정신을 민족의 가슴에 심어주었다. 안창호의 연설을 듣고 크게 감동하고 공감한 이승훈은 평안북도 신민회 책임자가 되어서 오산중학교를 세우고 안창호의 교육이념과 정신에 따라서 민족교육운동에 헌신하였다.

안창호는 민주적으로 자각한 사람들이 서로 협동하고 단결하려면 먼저 건전한 인격을 기르고 단결하고 협동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일합병을 앞두고 다시 미국으로 망명한 안창호는 민족통일을 상징하는 8도의 청년대표들을 뽑아서 흥사단을 창립하였다. 흥사단은 덕력과 체력과 지력을 길러서 건전한 인격을 형성하고 공고한 단결을 훈련하려고 만든 단체였다. 건전한 인격을 가지고 단합한 지도자들이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이룸으로써 일제와 맞서 싸워서 민족의 자주독립을 쟁취하자는 목적으로 흥사단이 만들어진 것이다.

 

삼일혁명의 정신과 철학을 형성하고 실천한 안창호

 

안창호가 일으킨 신민회의 교육독립운동과 대한인국민회(공립협회)의 민주공화 운동은 한국민족의 가슴에 자주독립과 민족통일의 불씨를 심어주었다. 애국가를 지은 해인 1907년에 안창호는 비밀독립단체로 신민회를 조직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애국독립을 고취하는 연설을 하였다. 그는 한국이 국제적으로 위태로운 지경에 있음을 경고하고 정부당국자가 부패하고 국민이 무기력함을 한탄하였으며 우리 민족의 결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지금 깨달아 스스로 고치고 스스로 힘쓰지 않으면 망국을 누가 막으랴 하고 (안창호의) 눈물과 소리가 섞이어 흐를 때는 만장이 느껴 울었다. 그는 뒤이어서 우리 민족의 본연의 우미성(優美性)과 선인의 공적을 칭양하여 우리가 하려고만 하면 반드시 우리나라를 태산반석 위에 세우고 문화와 부강이 구비된 조국을 이룰 수 있다는 것으로 만장 청중으로 하여금 서슴지 않고,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게 하였다.” 안창호가 대한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킨 10 여년 후에 삼일운동이 일어났다. 삼일운동은 한국 사람들이 모여서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르며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운동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깨워 일으켜 민족의 자주독립과 통일을 이루려는 안창호의 교육독립운동과 민주적 조직운동은 한국민족의 가슴에 스며들었다가 삼일운동으로 살아났다.

삼일운동은 민족대표들의 호소와 자극으로 시작되었으며, 각 지역의 민중이 자발적으로 계획하고 조직하고 협력하여 전국적으로 일어난 자생적 민중운동이었다.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서 민중이 스스로 일어나 ‘대한독립만세!’를 외침으로써 민족의 독립을 선언했다. 이 점에서 삼일운동은 민족의 한 사람 한 사람을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깨워 일으켜 나라를 되찾고 바로 세우려 했던 안창호·이승훈 등의 교육독립운동이 열매를 맺은 것이다. 조직적으로 삼일운동을 계획하고 추진하고 주도한 것은 천도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이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서 스스로 일어나 나라의 자주독립을 선언한 것은 안창호의 교육독립운동과 민주통일정신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민족의 자주독립운동은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서 시작되어 안창호 이승훈의 교육독립운동을 거쳐 삼일운동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민을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깨워 일으켜 독립을 이루겠다는 일념이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서 시작되었고 안창호의 교육독립운동과 애국운동을 통해 심화되었고 삼일운동으로 결실을 보았던 것이다. 실제로 안창호가 조직한 청년학우회의 총무로서 안창호의 심복이었던 최남선이 독립선언서를 썼고 안창호의 교육 이념과 정신을 받아들여 평생 교육독립운동에 헌신한 이승훈은 민족대표들을 이끌어 삼일운동을 주도하였다. 안창호가 한국민족의 가슴에 심어놓은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한 사상적 정신적 불씨가 삼일혁명으로 살아난 것이다.

 

임시정부를 낳은 어머니 안창호

 

임시정부를 조직할 때나 임시정부를 이끌 때나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국민대표회의를 소집하고 대독립당을 추진하고 한국독립당을 조직할 때 안창호는 임시정부를 낳고 기른 어머니와 아버지의 심정과 자세를 가지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였다. 그의 사상과 실천은 이후 한국독립운동의 중심에서 계승되고 발전되었다. “전 민족적 항일 투쟁노선과 사회 민주주의적 독립국가 건설론이 포함된 이 같은 안창호의 생각은 그 후 민족주의 각 정당들과 임정을 포함한 우리 독립운동계에 공통으로 계승되고 발전되었다.”

 

2) 교육독립운동과 인간교육의 귀감인 안창호

 

한국근현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민족의 자주독립운동이 교육독립운동으로 전개된 것이다. 전봉준이 일으킨 동학농민혁명운동이 교육과 훈련과 준비 없이 일어났다가 장엄하게 실패하고 수십만 농민이 살육을 당한 후 민중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자각이 크게 일어났다. 동학농민혁명운동이 실패한 직후에 국민을 깨워 일으키는 애국계몽운동이 일어났고 독립협회가 설립되고 만민공동회가 열렸다. 애국계몽운동을 심화 발전시켜서 안창호는 신민회를 조직하고 교육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안창호를 이어서 이승훈은 오산학교를 세우고 교육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일본 도쿄대학을 정년퇴임한 오가와 하루히사 교수는 근현대 한중일 정치 사상가들을 연구한 전문학자다. 그는 한중일 근현대 정치가와 사상가들 가운데 안창호와 이승훈처럼 사랑으로 겸허하게 사람을 교육하는 일에 헌신한 인물은 없다고 하였다. 안창호와 이승훈처럼 진실하고 정직하게 사랑과 정성으로 겸허하면서 높은 인격을 가지고 사람을 사람답게 기르는 일에 집중한 사람은 일본과 중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안창호 이승훈의 교육독립운동은 한중일 근현대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특별한 일이다. 더 나아가서 세계근현대에서도 나라를 잃고 식민지가 된 민중을 깨워 일으켜 참 사람이 되게 하고 민족의 자주독립과 통일에 이르려고 한 것은 매우 특별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3) 안창호, 이승훈, 유영모, 함석헌으로 이어지는 정신과 철학의 계보를 열다.

 

안창호는 일찍이 한학과 유교경전을 공부했고 17세에 서울에서 선교사 학교에서 기독교정신과 과학사상을 배우고 익혔다. 1896년에 독립협회가 창립되고 만민공동회가 열리자 안창호는 여기에 적극 참여하여 민주정신과 원리를 배웠으며 민중을 깨워 일으킴으로써 민족의 자주독립을 이루는 운동에 앞장섰다. 안창호는 역사 문화적 주체성을 가지고 서양의 문화와 정신을 깊이 받아들임으로써 동서 문화가 합류하고 융합하는 세계사적 지평의 한 가운데 서게 되었다.

나라가 망하고 민족이 큰 고통을 겪는 과정에서 안창호는 생명체험과 민중체험을 깊이 하였다. 민족의 고통 속에서 안창호는 깊은 사상과 철학을 낳았다. 그는 자신의 몸과 맘속에서 생명과 정신을 깊이 자각하고 체험하였다. 그리고 한국역사의 한 가운데서 민중을 만나서 민중과 하나로 되는 깊은 체험을 하였다. 자신의 생명과 정신을 깊고 높게 실현하고 완성하려고 했으며 민중과 함께 서로 돌보고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했고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이루어 민족의 독립과 세계평화에 이르려고 하였다. 그의 사상과 철학은 대학교에서 이론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고 서재에서 책을 읽고 만들어낸 것도 아니었다. 그는 인생과 역사에서 깨닫고 체험하고 실천한 것을 바탕으로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사상과 철학을 이끌어냈다.

그의 철학은 생명의 본성과 목적을 실현하고 완성하는 생명철학이고 생활철학이었다. 생명의 본성은 물질의 제약과 속박에서 해방된 자유와 기쁨을 가진 것이고 사랑으로 서로 소통하고 사귀고 하나로 되자는 것이다. 안창호는 평생 생의 기쁨과 사랑을 잃지 않았다. 또한 생명체는 세 가지 본성과 특징을 가진다. 스스로 하는 자발적 주체성, 내적으로 통일된 전체성, 새롭게 진화 발전함. 다시 말해 주체성과 전체성과 진화가 생명의 세 가지 본성이다. 생명의 철학자 안창호는 기쁨과 사랑을 가지고 주체의 자발성과 헌신성, 전체의 통일성, 진화와 혁신을 추구하고 실현하려고 했다.

안창호의 철학과 사상을 이어받아 유영모와 함석헌은 씨ᄋᆞᆯ철학을 만들었다. 이승훈은 안창호의 교육정신과 이념을 가지고 교육독립운동을 펼쳤다.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에서 유영모와 함석헌은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삼일운동에 참여한 함석헌은 평양고보를 자퇴하고 오산학교에 편입했으며, 일찍이 오산학교 교사로 일했던 유영모는 삼일운동으로 이승훈과 조만식이 감옥에 갇히자 오산학교의 교장으로 오게 되었다. 안창호의 교육정신과 이념이 살아 숨 쉬던 오산학교에서 삼일운동의 역사적 상황과 분위기 속에서 유영모와 함석헌은 만났으며 평생 한국근현대의 정신과 철학, 안창호의 정신과 철학을 심화 발전시키는 일에 헌신하였다.

유영모와 함석헌의 철학을 연구하면 기본 내용과 정신이 안창호의 철학과 일치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안창호, 유영모, 함석헌의 성향과 기질은 서로 다르지만 철학의 기본 내용과 정신은 일치한다. 유영모는 금욕과 명상 속에서 깊은 정신세계를 탐구하고 동서고금을 회통하는 철학을 형성했고, 함석헌은 정치, 사회, 종교, 문화, 교육의 여러 영역을 아우르는 자유롭고 활달한 사상과 철학을 펼쳤다. 그러나 유영모와 함석헌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철학, 주체와 전체를 일치시키며 주체 ‘나’를 확립하고 혁신하는 민주철학, 민족과 인류의 통일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통일철학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안창호와 일치한다.

유영모와 함석헌은 안창호와 마찬가지로 비과학적 운명론적 결정론적 사고와 신화적 교리,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종교적 감정과 행태를 깨끗이 청산하였다. 이들은 민중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과 존중을 가지고 민을 역사와 사회의 중심에 세웠다. 유영모가 『대학』에 나오는 ‘친민(親民)’을 ‘씨알 어뵘’(민을 어버이 뵙듯 함)으로 풀이한 것은 민을 어버이처럼 받들고 섬긴 안창호의 민중관과 일치한다. 유영모와 함석헌은 민을 씨ᄋᆞᆯ이라고 함으로써 민에게 자존감과 품격을 주었다. 씨ᄋᆞᆯ은 인간의 무궁한 생명력과 스스로 하는 자발적 주체성과 우주적 신적 생명의 초월적 전체성을 나타내고 표현한다.

유영모는 일찍이 과학교사를 지냈으며 ‘생각’을 삶과 철학의 중심에 놓았다. 그는 ‘생각함’으로써 내가 나로 되고 새롭게 변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나’를 깊이 탐구하여 나를 확립하고 나의 탈바꿈과 변화를 이룸으로써 모두 하나로 돌아가는 귀일(歸一)을 거쳐 참된 통일에 이르려고 하였다. 유영모의 가장 핵심적 말은 ‘솟아올라 나아감’이다. 솟아올라 나아감으로써 내가 새롭게 변화하고 귀일하고 통일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함석헌은 안창호와 이승훈의 교육독립운동을 계승하여 철학적으로 심화 발전시키고 완성하였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함으로써 그는 민의 주체적 자각을 역설하였다. 그의 철학은 민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과 존중에서 시작되었다. 그가 “거울에 비친 네 얼굴을 먼저 사랑하고 존경하라.”고 한 것은 안창호의 애기사상과 일치한다. 그리고 그가 인간혁명론을 통해 인간의 자기 혁신을 주장한 것은 안창호의 인간 개조론과 일치한다. 그는 인간의 스스로 하는 주체와 하나로 통일된 전체가 참이고 선이고 아름다움이라고 하였다. 스스로 하는 주체가 없는 것, 전체의 하나 됨이 깨진 것은 참도 아니고 선도 아니고 아름다움도 아닌 것이다. 나다운 나,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나’가 참이고 선이고 아름다운 것이다. 전체와 이어지고 전체가 하나임을 드러내고 표현하고 실현 하는 것이 참이고 선이고 아름다움이다. 그는 또한 인간과 역사를 생명진화의 과정에서 보았다. 고통과 시련 속에서 자아가 깨지고 새로워짐으로써 죽음을 넘어 새롭게 나아가는 것이 생명과 역사의 진리다.

안창호, 이승훈, 유영모, 함석헌은 권리주장과 이해관계보다 더 깊고 높은 생명의 근원과 사명에서 인간과 역사를 이해했다. 민을 신뢰하고 사랑하고 존중했다는 점에서,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새롭게 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상생과 공존의 삶을 실현함으로써 민족통일과 세계평화에 이르려 했다는 점에서 인간의 자기 교육과 변화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네 사람은 하나의 역사적 철학적 계보를 형성한다.

 

3. 안창호의 인간교육철학: 나는 어떻게 민주시민이 되는가?

 

정신과 철학의 근본적 변화(paradigm shift): 새로운 기축시대로의 전환

 

이제까지 인류의 정신과 철학은 2,500년 전에 공자, 노자, 석가, 소크라테스, 히브리 기독교 정신[예레미야-예수]에 의해 열린 기축시대의 정신과 철학에 의해 형성되고 규정되었다. 이들은 인간의 내면적 본성에서 궁극적 가치와 힘(仁, 자비, 로고스)을 발견하고 보편적 진리와 윤리의 체계를 제시하였다. 신분계급질서와 체제 속에서 살았던 이들은 인간의 본성이 변함없는 궁극적 실재라 보았고 인간을 삶과 역사의 창조적 주체로 제시하지는 못했으며, 동서를 아우르는 세계 보편적 정신과 철학을 확립하지 못했다.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체험한 자신들을 믿고 따르거나 자신들이 깨닫고 체험한 진리의 내용과 방식을 믿고 따르라고 민중에게 요구하였다. 이들과 민중 사이에 민주적이고 쌍방향적이며 서로 소통하는 관계와 운동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소크라테스는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이성과 진리를 앞세웠으나 무지한 민중에 대해서 오만하고 일방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민중 속에서 민중과 더불어 살았던 예수도 민중에게 믿고 따를 것을 역설했을 뿐 민중이 이성적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주체로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이끌지는 못했다. 20세기의 성인으로 일컬어지는 간디조차도 일방적이고 권위적으로 민중운동을 이끌었을 뿐 민주적이고 쌍방향적인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전 시대와 근현대를 구분 짓는 세 가지 변화는 민주화, 과학화, 세계화다. 근현대에 이르러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국민(인간)은 역사와 사회의 창조적 주체이며 서로 주체로서 국가의 공동주권자라는 원칙이 확립되었다. 민주시대에는 서로 주체로서 민주적이고 쌍방향적인 지도력과 관계와 운동이 요구된다. 과학기술이 획기적으로 발달하면서 인간이 자연과 삶과 역사(국가)의 창조적 주체로 등장했고 자연 만물과 생명의 본성뿐 아니라 인간의 본성조차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과학기술사회가 되면서 원인과 결과가 작용하고 지배하는 사회질서 속에서 살게 되었고 미신적이고 결정론적 사고를 벗어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세계화가 이루어지면서 동서를 통합하고 개인과 인류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정신과 실천이 요구되었다.

안창호는 누구보다도 확고한 민주정신과 통일정신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모든 국민이 나라의 주인과 주체이며 공동 주권자임을 내세우는 민주정신과 민족과 국가를 유기체적 생명공동체로 파악하는 통일정신을 확립했다. 안창호는 민주적이고 쌍방향적인 지도력과 관계와 운동을 실현한 전형적 인물이다. 그는 민중을 믿고 민중을 섬기고 받들면서 민중이 주인과 주체로 깨어 일어나도록 겸허히 민중에게 호소하였다. 그의 교육독립운동은 민중을 나라와 역사의 주인과 주체로 섬기고 민중이 주인과 주체로 깨어 일어나도록 민중에게 호소한 운동이다. 삼일운동은 민중이 깨어 일어나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도록 지식인 지도자들이 겸허히 민중에게 호소한 운동이다. 안창호의 교육독립운동과 삼일운동은 민주적이고 쌍방향적인 운동의 전형이다.

안창호는 인간의 내적 본성과 인격뿐 아니라 민족의 본성과 성격을 새롭게 변혁함으로써 인간을 삶과 역사의 새로운 주체가 되도록 이끌었다. 그는 또한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였다. 자연과 역사와 도덕의 세계에서 원인과 결과를 중시하는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무실역행을 주장했다. 안창호는 어려서 한학을 배움으로써 동아시아 정신문화를 체득하였고 선교사학교와 독립협회 그리고 미국 활동을 통해서 서양의 기독교정신과 과학사상과 민주정신을 깊이 받아들이고 체화하였다. 그는 동서의 정신문화를 아우르는 세계 보편적인 정신과 철학을 확립하였다.

안창호는 민주화, 과학화, 세계화를 가장 잘 구현하고 실현한 인물이었다. 그는 ‘나’의 주체를 확립하고 나의 자아를 끊임없이 새롭게 형성하고 변화시킴으로써 ‘나’를 중심에 세운 ‘나’의 철학자였다. 그는 과거의 철학과 종교에 남은 미신적이고 결정론적이며 모호한 낡은 잔재를 말끔히 씻어내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의 철학을 제시하였다. 그는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으면서도 세계평화와 정의로 나아가는 길을 활짝 열었던 세계적인 철학자다. 안창호는 기축시대의 생각과 행동의 방식과 형태를 근본적으로 바꾸었으며 새로운 기축시대의 정신과 철학의 세계를 열었다.

 

1) 안창호의 인간교육철학

 

인간교육은 스스로 인간이 되고 인간답게 사는 인간의 자기 교육이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를 인간으로 형성하고 인간다운 인간으로 되도록 이끌고 돕는 교육이다. 국가와 세계의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인간교육은 민주시민을 형성하고 교육하는 일이다.

 

ㄱ. 도산의 진리 체험과 교육철학의 새로움

 

스승 도산의 깨달음과 민중체험

 

도산은 쾌재정의 연설과 종로 만민공동회의 연설을 통해 민중(민족)과 하나로 되는 깊은 체험을 하였다. 이 때 도산은 가진 것 없고 이름 없는 새파란 젊은이였다. 높은 관리들과 민중들 앞에서 그는 오직 성심을 다해서 진실을 말하였다. 그가 관리들의 무능과 부패와 학정 속에서 나라가 망해가고 있음을 거리낌 없이 떳떳하게 밝혔을 때 민중은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환호했고 높은 관리들도 함께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이 때 도산은 자신의 몸, 맘, 얼이 하나로 되고 민중(민족)과 온전히 하나로 되는 놀라운 생명[진리, 역사, 하나님, 가치, 의미] 체험을 하였다. 민중과 하나로 되는 체험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크고 높은 체험이다.

도산의 이러한 진리 체험이 가지는 정신사적 위치를 생각해 보자. 인간이 할 수 있는 진리 체험을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자연환경과 만물 속에서 신령한 힘과 불멸의 가치를 발견하였다. 물활론(애니미즘) 단계다. 둘째 국가의 권력자와 국가에서 신령한 힘과 불멸의 가치를 발견하였다. 국가주의 종교단계다. 셋째 인간 자신의 본성과 내면에서 궁극적 힘과 가치를 발견하였다. 공자, 노자, 석가, 소크라테스와 같은 성현들의 기축시대다. 인간 내면의 본성(자비, 사랑, 로고스)에서 궁극적 힘과 가치를 발견함으로써 나와 남(만물)을 아우르는 보편적 윤리[황금률]를 발견하였다. 이것은 나와 이웃(만물)과의 신비한 일치의 체험이다. 천인합일, 신인합일, 범아일여, 물아일체, 무위자연, 보편진리로 포현되는데, 이러한 초시간적 초월적 신비·진리체험은 개인의 주체가 전체(천, 신, 만물, 진리)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넷째 인간은 역사와 사회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민중(나와 다른 인간들의 공동체적 집단)에게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민중과 하나 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민중체험은 내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실존체험과 이웃·만물에게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신비 체험을 포함하는 체험이다. 이것은 역사와 사회의 구체적인 민중들과 하나로 되는 체험이니 가장 깊고 높고 큰 진리체험이다. 역사와 사회의 구체적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이 체험에서는 개인의 주체가 깨어 있으면서 고통 받고 억압받는 민중과 하나 됨으로써 참된 주체와 전체의 일치, 참된 사랑과 정의에 이른다.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알뜰하고 절실하며 깊고 높고 큰 체험과 깨달음이다.

넷째의 진리 체험은 인간의 주체를 발견하고 실현해가는 근현대의 진리 체험이다. 이것은 근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알게 모르게 체험하고 실현해가는 진리다. 그리고 넷째의 진리 체험 속에는 첫째, 둘째, 셋째의 진리 체험이 승화 고양되고 통합되어 있다. 도산의 위대한 점은 이런 깊고 큰 체험과 깨달음을 끝까지 이어가며 심화 발전시켰다는데 있다. 그의 민중·생명체험은 자연환경과 인간과 역사와 세계(국가)를 깊이에서 전체로 높고 크게 볼 수 있게 했다.

도산의 진리 체험은 쾌재정의 연설에서 이루어졌고 그의 철학과 사상의 씨가 이 때 심겨지고 그 뿌리가 깊이 박혔다. 그가 1906년 봄에 공립협회 1주년 기념강연에서 민이 서로 ‘보호하고 단합함’이 문명부강의 뿌리와 씨라고 한 것을 보면 민주와 통일을 지향하는 그의 철학과 사상이 뿌리를 깊이 내리고 싹이 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해 말에 미국에서 동지들과 함께 작성한 ‘대한신민회 취지서’는 이미 그의 사상과 정신, 경륜과 방책이 깊고 높고 크게 확립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이미 사상과 정신, 경륜과 방책에서 거의 완벽한 준비를 해 가지고 1907년 초에 한국에 왔고 신민회를 조직하고 대성학교를 설립했다. 그가 한국에 돌아와서 수많은 강연을 했지만 모든 강연이 듣는 사람들의 몸과 맘을 사로잡고 그를 따르게 했던 것은 한민족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깊은 철학과 사상, 경륜과 방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산의 교육사상과 철학의 새로움

 

도산의 진리 체험은 생명체험이고 역사체험이다. 생명과 역사는 스스로 하는 주체 ‘나’를 가진 것이며 전체가 하나로 이어지고 통일된 것이고 늘 새롭게 진화 발전하는 것이다. 자발적 주체, 통일적 전체, 진화 발전(개조)의 세 가지 원리가 그의 철학과 사상 속에 확립되어 있다. 도산은 그의 철학의 기본내용과 실천방법을 4대 정신(무실·역행·충의·용감)과 3대 교육(덕력의 교육, 체력의 교육, 지력의 교육), 인격개조와 활사개공(活私開公), 대공사상과 공사병립, 정의돈수(사랑공부)와 애기애타 등으로 제시했다. 그의 철학의 기본내용과 실천방법은 단순한 도덕교육과 소박한 조직 활동의 차원을 넘어서 생명과 영, 인격과 정신의 깊고 높은 자리에서 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우주적 보편적 정신에 비추어 이해되고 해석되어야 한다. 도산의 인격과 정신이 얼마나 깊고 높으며 그의 기상과 뜻이 얼마나 크고 장엄한가를 그의 삶과 말과 글을 살펴보면 알 것이다.

도산은 주체인 나를 확립하고 주체인 나와 민족전체의 일치(大公)에 이르려 했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주체를 확립하고 민족 전체의 단결과 통일에 이르기 위해서 인격과 민족성의 개조를 추구했다. 생명과 역사 속에서 인간과 민족국가를 보았으므로 도산은 인간과 민족의 본성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창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기본 틀 거리인 인격(人格)을 개조(改造)한다는 것은 인간의 성격과 성품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개혁하고 창조한다는 말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덕력과 체력과 지력을 기르고 인격을 개조하여 주체를 확립하고 개인의 주체와 민족 전체의 일치에 이르고, 민족의 성격과 풍습을 개조함으로써 민족 전체의 단결과 통일과 독립에 이른다는 도산의 철학은 ‘나’를 살리고 힘 있게 하여 공(公)의 세계를 열어가는 활사개공의 철학이며 그대로 인간(인성, 전인)교육의 철학이다.

안창호가 말한 개조는 생명과 정신의 본성과 목적을 실현하고 완성하는 것이며 자연만물과 물질의 물성과 가치, 이치와 의미를 드러내고 실현하고 완성하는 것이다. 생명진화와 역사의 진보 속에서 인간과 민족의 본성을 보면 인간과 민족의 본성은 진화 발전할 수 있고 변화 고양될 수 있다. 아메바에서 인간까지 생명이 진화한 것이라면 생명의 본성은 끊임없이 창조되고 진화 발전되어 온 것이다. 생명진화와 인류역사 속에서 형성된 인간과 민족의 본성도 새롭게 개혁되고 창조 변화되고 진화 발전할 수 있다. 역사와 사회 속에서 인격과 민족성의 개조를 추구한 도산의 철학과 사상은 매우 현대적이고 역동적이며 도덕적이고 영성적 차원을 지니고 있다. 도산 철학의 진정성은 도산 자신의 삶과 정신과 실천에서 실증되었다. 도산은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지만 나 안에 갇혀 있지 않았고 가정을 사랑하고 존중했지만 가정 안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생명이 물질 안에서 물질을 초월하여 끊임없이 진화 발전해 가듯이 도산은 나와 가정, 단체와 사회 속에서 그것들을 넘어서 위로 올라가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였다.

인간본성의 근본적이고 역동적 변화를 말하는 도산의 이러한 인간관은 기존의 모든 인간관, 동양의 인간관, 고대 그리스의 인간관, 근현대 서구의 인간관과 다르다. 유교는 하늘로부터 타고난 인간의 주어진 본성(本然之性)을 지키거나 실현하려고 했다. 도교는 자연 질서와 변화의 길과 방식에 순응하는 인간을 추구했다. 불교는 시공간적 구체적 현실을 부정하거나 초월한 초시간적, 초역사적 불성(佛性)을 추구했다. 그리스의 이성철학은 인간과 인간의 본성을 철저히 이성의 관점에서 봄으로써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인간이해에 머물렀다. 그리스철학이 추구한 Idea(이데아)와 Theory(이론)은 모두 본다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이데아와 테오리는 순수한 이성이 본 것일 뿐이다. 이성의 관조(觀照)는 인간의 본성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지만 인간의 본성을 혁신하고 새롭게 창조할 수 없다. 근현대 서구의 이성주의철학은 순수 이성의 계산과 논리를 추구한 수학적 사고, 물질적 인과관계와 작용을 탐구한 자연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연구하고 교육하는 학문체계를 확립했다. 수학적 논리와 계산을 바탕으로, 물질적 인과관계와 작용을 탐구하는 자연과학적 연구는 자연적으로 주어진 인간과 인간 본성을 현상적으로 설명하고 소개할 뿐 인간과 인간의 본성을 새롭게 변화시키거나 탈바꿈할 수 없다. 이처럼 기존의 철학과 사상에서는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키는 인성교육(전인교육)을 할 수 없고 인간혁명을 말할 수 없다.

 

ㄴ. 개조의 필요와 철학

 

인간의 자기개조와 해방

 

생명진화와 인류역사를 통해 생명과 인간은 주위의 관계와 환경 속에서 쉼 없이 자신을 변화시키며 형성해온 존재다. 인간은 자신을 스스로 형성하는 창조자이며 자신에 의해 형성되는 피조물이다. 인간이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형성하는 일은 남이 대신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할 일이다. 이러한 생명과 인간의 진리를 파악한 안창호는 ‘개조’라는 연설에서 인간을 ‘개조하는 동물’이라고 했다. 그는 개조라는 주제를 평생 생각했으며, 과거의 모든 성현들의 가르침을 한 마디로 하면 ‘개조’로 줄일 수 있다고 하였다. 기독교의 회개도 결국 인간의 개조를 뜻한다고 보았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는데 행복의 어머니는 문명이고 문명의 어머니는 개조하는 인간의 노력이라고 했다. 인간은 주변의 환경, 사회를 개혁하고 개조하여 문명을 이루지만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은 인간의 개조다. 안창호는 민족의 개조, 사회와 자연환경의 개조를 말했지만 그러나 이 모든 개조는 인간 자신의 개조에서 시작되고 인간의 개조로 귀결된다고 하였다. 인간의 개조는 남이 할 수 없고 자신이 스스로 해야 한다고 보았으므로 안창호는 인간의 자기 개조를 역설하였다.

그가 창설한 흥사단의 이념과 목적은 인격을 개조하여 건전한 인격을 형성하는 인격수련과 교육에 있다. 인간교육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인간 자신의 변화는 기본적으로 자기 스스로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인간교육의 기본 원리다. 인격개조를 통해 건전한 인격을 이루려는 흥사단의 이러한 교육이념과 목적은 개인의 수양과 교육에 머물지 않고 조직과 단체의 공고하고 신성한 단결을 이루며 조직과 단체의 공고한 단결을 통하여 민족 전체의 자주독립과 통일에 이르자는 것이다.

안창호는 과거의 성현들의 가르침을 한 마디로 ‘개조’로 파악했지만 그의 인간 개조 사상은 근현대의 특징과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과거의 철학이나 종교에서 말하는 인간 개조의 사상과는 다르다. 과거의 인간 개조 사상은 변화하는 역사와 사회의 맥락을 벗어나 있으며 인간의 주체성과 전체성의 역동적 일치와 혁신에 이르지 못하고 보편적 진리나 실재에 인간의 주체를 귀속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안창호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건전한 인격을 형성하고 조직과 단체의 공고하고 신성한 단결을 이룸으로써 민족 전체의 독립과 통일에 이르려고 하였다. 역사와 사회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인간의 개별적 주체를 확립하여 민족(세계) 전체와의 역동적 일치를 추구하고 서로 주체로서 서로 보호하고 구원하는 민의 주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의 인격개조론은 민주적이고 현대적인 민의 주체적 자각을 담고 있다.

 

개조의 필요와 철학

 

인간의 자기 개조를 말하는 안창호의 인간 철학은 생명과 정신의 근본적인 성격과 지향을 나타낸다. 그는 인간을 개조하는 동물이라고 갈파했는데 이것은 생명진화와 인류역사의 진실을 드러낸다. 인간의 생명과 정신은 생명진화와 인류역사를 통해서 자신과 타자, 주위환경을 끊임없이 새롭게 개조해왔다. 인간과 생명은 생명진화와 인류역사 속에서 스스로 자신을 형성하고 형성되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자신의 창조자이며 피조물이다. 안창호가 말했듯이 사람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적극적이고 의식적으로 주체적으로 자신과 이웃을 개조하는 존재다. 그의 말대로 인간은 개조하는 동물이다. 지성과 영성을 지닌 인간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듯이 자연의 본성과 본질을 넘어서서 그 본성과 본질을 개조하고 변혁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인간은 여전히 자연이면서 자연의 굴레와 속박을 벗어나 자연의 본성과 본질을 개혁하고 창조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가 된 것이다. 개조(改造)는 말 그대로 개혁과 창조다. 안창호가 문명의 어머니를 인간의 개조하는 노력이라고 한 것은 인간의 개조가 민주와 문명의 토대이며 목적인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가 말했듯이 인간의 개조하는 모든 노력은 결국 개조하는 주체의 자기 개조로 귀결된다. 자아와 환경을 개조하는 인간으로서의 자각은 민의 주체적 자각이 이루어진 근현대의 인간에게서 비로소 가능해진 것이다.

 

인간의 본성과 자아는 개조와 혁신 속에 있다

 

생명진화와 인류역사에서 보면 인간의 주체로서의 자아는 고정된 실체나 본성이 아니고 배타적 초월적 존재도 아니다. 인간의 생명과 정신의 주체는 생명진화와 인류역사의 오랜 과정에서 끊임없이 스스로 변화하고 스스로 형성된 것이다. 물질이나 박테리아에서 파충류, 포유류를 거쳐 인간의 이성과 영성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본성은 끊임없이 변화와 진화를 거쳐 왔다. 생명과 정신은 끊임없이 자기 부정과 초월을 통해 자기 변화와 창조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생명과 인간의 주체와 전체는 본성과 현상의 개조와 탈바꿈의 진리를 실현해왔다. 인간의 몸과 맘속에는 물질과 박테리아에서 파충류, 포유를 거쳐 감성과 지성과 영성을 진화 발전시켜 온 생명진화와 인류역사가 압축되어 있다. 인간의 몸과 맘속에는 파충류, 포유류가 살아 있다. 몸, 맘, 얼로 이루어진 인간은 물체, 기계가 될 수도 있고 본능과 욕망에 휘둘리는 파충류가 될 수도 있고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포유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합리적 지성을 가진 인간이 될 수도 있고 영성과 신성을 가진 위대하고 거룩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만들고 스스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존재다. 인간의 본성과 자아는 개조와 혁신 속에 있다.

수 백 만 년 수 억 년 동안 인간의 본성과 성질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임의로 쉽게 개조하고 바꿀 수 없다. 박테리아, 아메바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생명진화를 이루어왔으므로 생명과 정신의 본성은 끊임없이 탈바꿈하며 진화 고양되어온 것이다. 애벌레가 고치를 거쳐 나비가 되듯이 박테리아에서 인간으로 탈바꿈하였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과 정신을 개조 변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개조, 교육은 타자에 의해서 강제로 타율적으로 될 수 없다. 인간의 교육, 개조는 스스로 하는 것이다. 인격의 개조는 인간이 제 인격을 스스로 개조해야 한다. 인간교육의 원리는 스스로 하고 스스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창호는 인간의 자기 개조를 말하였다.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는 것은 저마다 자유로운 책임적 주체이면서 서로 보호하고 단합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가 되고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서로 주체로서 서로 보호하고 협동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자유로운 주체인 나가 될 뿐 아니라 이웃, 타자를 자유로운 주체로 인식하고 존중하며 서로 단합 통일되어 함께 협동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롭고 협동적인 존재로 확립되어 있지 않다. 자신과 타자에게서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야 하고 다른 주체들과 협동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인간은 기성품처럼 완성되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새롭게 하고 스스로 새롭게 되어야 할 존재다. 이 점에서 안창호가 말하는 자기개조의 교육철학은 인간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자아실현의 심리학이나 교육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2) 인격개조와 민주시민의 형성 : 나는 어떻게 민주시민이 되는가?

 

ㄱ. 인격개조의 내용과 방법

 

안창호에게 인간 자아는 이웃 동료의 자아와 서로 보호하고 협동하는 열린 자아이고 주위 환경과 서로 살리고 더불어 사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에게 주위 환경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은 곧 인간 자신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몸을 바르고 단정하게 하고 행동거지를 올바르게 가지는 것은 곧 그의 정신과 영혼을 바르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너와 나와 그가 하나의 생명공동체 속에서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안과 밖, 자아와 환경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

 

환경과 나의 일치: 환경과 강산의 개조

 

도산은 사람을 교육하고 훈련하기에 앞서 먼저 길거리를 쓸고 마당을 쓸고 집안을 깨끗이 하고 변소를 깨끗이 했다. 삶의 터전과 나, 환경과 사람이 분리되지 않는다. 그는 주위의 물건 하나도 깨끗하고 아름답고 보람 있게 하였다. “(안창호는) 문짝 한 끝, 화분 하나도 몸소 여러 상점을 돌아서 골라잡았고, 그것을 걸 곳에 걸고 놓을 곳에 놓는 것도 다 깊이 생각하여서 그 중 좋은 길을 취하였다.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어물쩍 어물쩍’ 하는 것을 도산은 ‘거짓’과 아울러 조국을 망하게 한 원수라고 보았다.” 그는 자기가 사는 지역을 사랑했고 자기가 사는 자리를 깨끗하고 아름답고 값지게 만들었다. 따라서 그의 정신과 생각이 그가 사는 자리와 주위에 표현되고 실현되었으며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은 그의 삶과 정신을 아름답고 깨끗하게 하였다. “그는 잠시 셋집이나 셋방살이를 하더라도 그 집 그 방을 곱게 단장하였다. 깨끗이 쓸고 닦고 문장(紋章)을 치고 그림을 걸고 화분을 놓고 뜰에 화초를 심고, 이 모양으로 자기가 있는 곳을 아름답게 하였다. 그래서 상해나 남경에서도 도산의 거처를 찾으려면 그 동네만 알면 그만이었다. 그 중에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집이 도산의 거처임에 틀림없었다.···거처 즉 환경은 거기 사는 자의 정신에 영향을 주는 동시에 그의 정신의 표현이라고 보았다.”

도산이 생각한 애국자의 애정은 국토와 민족 전체를 포용한다. “그에게는 국토의 일초일목(一草一木)과 한 덩어리 돌, 한 줌 흙이 다 내 집의 것이요, 국민의 남녀노소가 다 내 식구다. 그러므로 그는 어느 산의 한 귀퉁이 사태 난 것을 볼 때에 제 살이 뜯긴 듯이 아프고, 어느 동포 한 사람이 잘못함을 볼 때에 제가 잘못한 듯이 슬프다.” 안창호에게 자연환경과 국토는 인간의 자아와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자연환경과 주위환경 그리고 국토를 깨끗하고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인간과 인간의 자아를 깨끗하고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강산의 개조를 말하였다.

 

“이제 우리나라에 저 문명스럽지 못한 강과 산을 개조하여 산에는 나무가 가득히 서 있고 강에는 물이 풍만하게 흘러간다면 그것이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큰 행복이 되겠소. 그 목재로 집을 지으며 온갖 기구를 만들고 그 물을 이용하여 온갖 수리에 관한 일을 하므로 이를 좇아서 농업, 공업, 상업 등 모든 사업이 크게 발달됩니다. 이 물자 방면뿐 아니라 다시 과학 방면과 정신 방면에도 큰 관계가 있소. 저 산과 물이 개조되면 자연히 금수, 곤충, 어오(魚鰲)가 번식됩니다. 또 저 울창한 숲과 잔잔한 물가에는 철인 도사와 시인 화객이 자연히 생깁니다. 그래서 그 민족은 자연을 즐거워하며 만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높아집니다. 이와 같이 미묘한 강산에서 예술이 발달하는 것은 사실이 증명하오. 만일 산과 물을 개조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자연에 맡겨 두면 산에는 나무가 없어지고 강에는 물이 마릅니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큰 비가 오면 산에는 사태가 나고 강에는 홍수가 넘쳐서 그 강산을 헐고 묻습니다. 그 강산이 황폐함을 따라서 그 민족도 약하여집니다.”

 

강산을 개조하여 산에 나무가 가득 하고 강에 물이 풍만하게 흘러간다면 우리 민족의 산업이 발달할 뿐 아니라 철인 도사와 시인 화객이 생겨난다고 하였다. 강산의 개조가 인간의 개조이고 민족의 개조였다. 이것은 인간(민족)의 자아와 강산을 ‘서로 주체’로 본 것이다. 안창호가 말한 강산의 개조는 인공적으로 운하를 만들고 댐을 만들어 강산을 인위적으로 바꾼다는 것이 아니다. 자연을 더욱 자연스럽고 풍성하게 하고 국토를 더욱 아름답고 풍부하게 하자는 것이다. 자연환경과 주위환경 그리고 나라 땅을 사랑한 안창호는 자연환경과 나라 땅도 생명의 주체와 전체로서 물성과 이치에 따라 온전히 실현되고 풍성해지기를 바랐다. 그는 자연환경과 나라 땅을 주체와 전체로 존중하고 배려한 것이다.

생명은 안과 밖, 자신과 환경이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환경에는 자연뿐 아니라 사회와 역사도 포함된다. 인간은 생명체로서 주변 환경과 분리될 수 없다. 생명과 자연환경은 서로 깊게 결합되어 있다. 신토불이라 하지만 그보다 더 깊게 인간은 주위환경과 결합되어 있다. 인간의 생명과 정신 속에는 밖의 환경과 사물이 깊이 들어와 있고 인간의 생명과 정신이 환경과 사물에 깊이 반영되어 있다. 안창호는 언제나 주변의 사물과 환경을 소중하고 아름답고 깨끗하게 가꾸었다. 사물과 환경을 깨끗하고 아름답고 소중하게 만드는 것이 곧 자신의 생명과 정신을 깨끗하고 아름답고 소중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가 길과 마당, 집안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한 것은 보건위생이나 환경미화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니다. 사람의 생명과 정신이 환경에 표현되고 실현되는 것처럼 환경도 인간의 삶과 정신에 반영된다. “도산은 집과 주위 환경의 정결과 정돈이 민족 개조의 중요 과목이요 제1과목이라고 생각했다. 몸가짐과 거처부터 개조 일신하지 않으면 문명한 독립 국민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안창호에게는 주위환경, 땅, 나무 한 그루, 물건 하나하나가 모두 깊은 의미와 가치를 지닌 것이고 주체와 전체로서 배려하고 존중해야 할 것들이었다. 그는 작은 물건 하나도 쓰고 버리는 소모품으로만 여기지 않고 그것이 있어야 할 곳을 찾아서 있어야 할 자리에서 주체로서 그리고 전체와 연결된 것으로서 소중하고 의미 있게 제 구실을 하게 하였다. 나와 환경을 서로 주체로 보고 물건 하나하나를 주체와 전체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은 신토불이, 물아일체를 뛰어넘는 훨씬 깊고 높고 세련되고 구체적인 정신과 철학의 경지를 드러낸다.

 

나와 나라의 일치를 위한 개조: 나와 민족의 개조

 

-국가는 민의 생명공동체

 

1907년 5월에 한 ‘삼선평 연설’에서 도산은 나라가 살아 있는 민중의 생명공동체임을 명확하게 말했다. “예전에는 왕씨나 이씨 한 사람의 나라였다. 이제는 민중 한 사람 한 사람 우리의 어깨 위에 나라를 짊어지고 있다. 이제 낡은 생각을 버려라. 나라는 이제 우리의 나라다.” ‘살아 있는 우리’의 나라이므로 나라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생명공동체다. 민의 나라는 한 몸을 이룬 생명체다. “손가락 하나가 아프면 온 몸이 아프다. 오장육부와 지체들이 서로 연결되고 통하는 것이다. 몸의 장부와 지체 사이에 병이 들면 생맥(生脈)이 돈절(頓絶)되어, 깨지고 끊어지면 몸 전체가 막혀버린다. 국가 중에 생맥이 끊어진 자리가 있으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홀로 보전할 도리가 있으리오. 그런즉 나라 사랑(愛國)하기를 제 몸 사랑(愛身)하듯 할 것 아닌가!” 이 글에서 나와 나라를 일치시키는 도산의 민주적 국가이해가 뚜렷이 나타난다. 도산의 국가이해에는 국가주의적 요소가 말끔히 제거되어 있다.

도산의 이러한 민주적 국가이해는 매우 새롭고 심오한 것이다. 군주제를 폐지하고 민주공화정을 내세우는 사람은 이 시기에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일본의 보호를 받고 있지만 아직 조선왕조와 황실은 존재하고 있었다. 도산이 조직한 신민회는 한국근현대사에서 최초로 민주공화정을 정치이념으로 내세운 단체다. 도산은 미국에서 공립협회를 조직하고 ‘대한신민회취지서’를 쓸 때 이미 민주공화정의 이념과 원리를 확실하게 제시하였다. 삼선평 연설에서 도산은 아주 명확하게 민이 나라의 주인이고 주권자임을 밝히고 있다. 더 나아가서 민이 주인인 나라를 하나의 생명체로 파악하였다. 손가락 하나가 아프면 몸 전체가 아프듯이 민 하나가 아프면 나라 전체가 아픈 것이다. 몸의 장부와 지체 사이에 병이 들어 생맥이 깨지고 끊어지면 몸 전체가 막혀버리듯이 나라 가운데 생맥이 끊어진 데가 있으면 국민의 생명을 보전할 수 없다. 이처럼 국민과 국가는 유기체적 생명으로서 전체 하나로 이어져 있고 통합되어 있다.

여기서 도산은 국민이 곧 나라이고 나라가 곧 국민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나라가 국민이고 국민이 나라이므로 나라가 온전해야 국민의 몸도 온전하다. 국민이 제 몸을 온전하게 지키려면 나라가 온전하도록 나라를 사랑하고 지켜야 한다. 그러므로 도산은 국민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곧 제 몸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국민이 곧 나라이므로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곧 국민을 사랑하는 것이다. 나라의 주인과 실체와 주체는 국민이다. 나라가 잘 되고 못 되는 것은 오로지 국민 자신에게 달려 있다. 국민은 전적으로 나라를 책임져야 할 나라의 주인이고 주체다. 사람은 제 몸의 주인이고 주체다. 사람이 제 몸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듯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은 스스로 나라를 책임져야 한다.

 

-나의 습관과 능력의 개조

 

안창호는 인간의 고정된 본성이나 실체를 말하지 않았다. 안창호는 인간의 자아와 인격을 고정된 실체나 본성으로 보지 않고 습관과 행동으로 보았다. 그리고 습관과 행동에서 작용하는 것은 힘이다. 무기력한 습관과 행동이 있고 활력 있는 습관과 행동이 있다. 갈수록 힘이 떨어지게 하는 습관과 행동이 있고 갈수록 힘이 나는 습관과 행동이 있다. 안창호는 생명과 역사의 현실을 힘의 관점에서 보았다. 생명과 역사의 현실에서 실제로 작용하는 것은 힘, 능력이다. 생명과 역사의 현실에서는 힘이 있으면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고 힘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뜻과 생각이 있고 구상과 계획이 있어도 힘이 없으면 아무 일도 이루어질 수 없다. 힘은 생명과 역사의 구체적 현실을 나타낼 뿐 아니라 변화의 과정을 나타낸다. 원리와 법칙, 관념과 이념은 그 자체로서는 현실적으로 아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원리와 법칙, 관념과 이념은 힘이 작용하는 구체적 현실과 과정에서 반영될 수 있지만 그 자체로서 독자적으로 작용할 수 없다. 그것들은 힘이 작용하는 현실과 과정에서만 반영될 수 있다. 그것들은 힘이 작용하고 실현되는 과정과 양식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안창호는 힘을 가장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것으로 보았다. 공허한 담론과 이론을 배격하고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생각과 행동을 강조했기 때문에 안창호는 힘을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안창호는 민족의 자주독립과 통일을 가장 중요한 과제와 사명으로 보았기 때문에 민족의 개조를 말했다. 그가 능력 없는 민족을 개조하여 능력 있는 민족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민족을 개조한다는 것은 민족을 구성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능력 있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각 개인의 개조는 남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 자기가 자기를 개조해야 한다고 하였다. 안창호는 인격의 개조와 민족의 개조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 능력 없는 우리 민족을 개조하여 능력 있는 민족을 만들어야 하겠소. 어떻게 하여야 우리 민족을 개조할 수 있소? 한국 민족이 개조되었다 하는 말은, 즉 다시 말하면 한국 민족의 모든 분자 각 개인이 개조되었다 하는 말이오. 그런고로 한국 민족이라는 한 전체를 개조하려면 먼저 그 부분인 각 개인을 개조하여야 하겠소. 이 각 개인을 누가 개조할까요? 누구 다른 사람이 개조하여 줄 것이 아니라 각각 자기가 자기를 개조하여야 하겠소. 왜 그럴까? 그것은 자기를 개조하는 권리가 오직 자기에게만 있는 까닭이오. 아무리 좋은 말로 그 귀에 들려주고 아무리 좋은 글이 그 눈앞에 벌려 있을지라도 자기가 듣지 않고 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오. 그런 고로 우리는 각각 자기 자신을 개조합시다. 너는 너를 개조하고 나는 나를 개조합시다. 곁에 있는 김군이나 이군이 개조 아니 한다고 한탄하지 말고 내가 나를 개조 못하는 것을 아프게 생각하고 부끄럽게 압시다. 내가 나를 개조하는 것이 즉 우리 민족을 개조하는 첫 걸음이 아니오? 이에서 비로소 우리 전체를 개조할 희망이 생길 것이오.”

 

민족을 개조한다는 것은 민족을 구성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나’를 개조하는 것이다. ‘나’의 개조는 저마다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 안창호가 말한 것은 아주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교육에서 매우 근본적이고 중요한 원리를 밝힌 것이다. 인간교육은 내가 나를 개조하고 교육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개조는 추상적 관념적 개조가 아니다. 안창호는 나를 개조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습관의 개조를 역설했다. 안창호가 습관의 개조를 말한 것은 그가 추상적 관념적으로 인간을 생각하지 않고 인간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 것을 나타낸다. 안창호는 습관을 개조함으로써 ‘나’를 개조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면, 나 자신에서는 무엇을 개조할까. 나는 대답하기를 “습관을 개조하라” 하오. 문명한 사람이라는 것은 그 습관이 문명스럽기 때문이오. 야만이라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습관이 야만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모든 악한 습관을 각각 개조하여 선한 습관을 만듭시다. 거짓말을 잘 하는 습관을 가진 그 입을 개조하여 참된 말만 하도록 합시다. 글 보기 싫어하는 그 눈을 개조하여 책 보기를 즐겨하도록 합시다. 게으른 습관을 가진 그 사지를 개조하여 활발하고 부지런한 사지를 만듭시다. 이밖에 모든 문명스럽지 못한 습관을 개조하여 문명스러운 습관을 가집시다. 한번 눈을 뜨고 한번 귀를 기울이며 한번 입을 열고 한번 몸을 움직이는 지극히 작은 일까지 이렇게 하여야 하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까짓 습관 같은 것이야···”하고 아주 쉽게 압니다마는 그렇지 않소. 저 천병과 만마는 쳐 이기기는 오히려 쉬우나 (습관을 개조하는) 이 일에 일생을 노력하여야 하오.”

 

또한 안창호는 능력 없는 민족을 개조하여 능력 있는 민족으로 개조하자고 하였고 능력 없는 인간을 능력 있는 인간으로 개조하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능력 있는 인간, 능력 있는 민족을 만들기 위해서 습관의 개조를 말했다. “악한 습관을 개조하여 선한 습관을 만듭시다. 거짓말을 잘 하는 습관을 가진 그 입을 개조하여 참된 말만 하도록 합시다. 글 보기 싫어하는 그 눈을 개조하여 책 보기를 즐겨하도록 합시다. 게으른 습관을 가진 그 사지를 개조하여 활발하고 부지런한 사지를 만듭시다. 이밖에 모든 문명스럽지 못한 습관을 개조하여 문명스러운 습관을 가집시다. 한번 눈을 뜨고 한번 귀를 기울이며 한번 입을 열고 한번 몸을 움직이는 지극히 작은 일까지 이렇게 하여야 하오.”

습관을 개조함으로써 능력 없는 인간, 능력 없는 민족이 능력 있는 인간과 민족으로 된다는 생각도 안창호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실질적인 생각과 실천을 보여준다. 능력 있는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 안창호는 3대 교육으로서 덕력을 기르고 체력을 기르고 지력을 기르자고 했다. 인격개조를 위해서 덕력과 체력과 지력을 기르는 것을 말했다는 점에서 안창호는 실체론적 본성론이나 관념론적 주체이해에 빠지지 않았다. 생명과 역사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인간의 주체적 자아를 생각했기 때문에 습관의 개조를 말했고, 능력 없는 인간에서 능력 있는 인간으로, 덕력과 체력과 지력을 기르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인간의 개조와 교육을 생각한 것이다.

 

-몸을 고치고 가정을 고치라

 

안창호는 인간의 개조와 교육을 추상적으로 이론적으로 생각하기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민족과 인간의 개조를 “우리의 몸을 고치고 우리의 가정을 고치는 것”에서 시작한다. 병들고 약한 몸을 건강하고 고치고, 도타운 믿음과 따뜻한 사랑이 없는 가정, 가난하고 나약한 가정을 서로 믿고 사랑하는 풍성한 가정으로 고쳐야 한다. 이것은 날마다 할 일이고 사람이 해야 할 가장 큰 일이다. 안창호는 자기의 몸과 가정을 고치는 일에 힘쓰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속이는 사람이고 스스로 속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오늘에 할 일 중에 가장 우리가 할 큰일은 우리의 몸을 고치고 우리의 가정을 고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영하는 모든 일이 이 두 가지 기초 위에서 되겠습니다. 이것은 오늘에 불가불 할 일이요, 늘 할 일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몸부터, 우리 집부터 고치는 것을 큰일로 보지 않는다고 하면 우리는 세상을 속이는 사람이요, 우리가 스스로 속는 사람입니다. 내가 이런 주의를 주장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요 여러 동지의 특수한 사랑을 받는 사람 중의 하나인 줄 압니다. 그런데 나는 오늘에 할 일을 늘 못하는 것이 큰 한탄이외다.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못하는 한도 있고, 능력이 부족한 관계로, 물질의 부족으로 한함도 있으되, 그 중에 가장 크게 한탄할 그 관계는 나의 허위의 죄악 때문입니다. 오늘에 우리의 일이 생각대로 되지 못함을 한하다가는 나의 죄를 스스로 책하는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생명을 다하여 나의 오늘에 할 일을 그 오늘마다에 다하여 보려고 힘씁니다.”

인간은 저마다 자기의 삶과 제 나라의 주인과 주체이므로 책임적 관념과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자기 삶과 나라의 주인과 주체인 인간은 저마다 제가 저를 고치고 힘 있게 해야 한다. “자기의 몸과 자기의 집을 자기가 건지지 않으면 건져 줄 이가 없는 것과 자기의 국가와 자기의 민족을 자기가 구하지 않으면 구하여 줄 이가 없을 줄 아는 것이 곧 책임심이요 주인 관념입니다.” 인간은 자기 삶과 나라의 주인이고 주체이므로 자기가 자기를 구원하고 자기 민족을 스스로 구원해야 한다. 안창호는 개인의 삶, 가정과 민족, 국가를 구분하면서도 결합시켰다. 저마다 제 몸과 가정을 고쳐서 건강한 몸과 가정을 가질 때 민족과 국가를 구원할 수 있다.

 

나와 민중의 일치: 고난 받는 민중이 사랑으로 서로 돕고 구한다(患難相濟)

 

삼선평 연설에서 도산은 나라가 망하게 된 책임을 남에게 돌리고 나라를 구원할 주체를 밖에서 찾는 견해들과 주장들을 비판하였다. 맨 먼저 우리가 하늘, 하나님을 믿으면 하늘이 우리를 도울 것이라는 주장을 비판한다. 하늘은 이미 지난 4000년 동안 우리나라를 알뜰하게 보살피고 도와주셨다는 것이다. 지금 나라가 망하게 된 것은 하늘이 돕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라의 구성원들인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이다. 도산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들을 돕는다.”(God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는 서양의 속담을 중요하게 여겼다. 동양에서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란 말이나 “사람이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盡人事待天命)는 말은 이러한 서양의 속담과 비슷한 말이다. 사람이 제 할 일을 충실히 하지 않고 하늘(하나님)이 해 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도산은 유태인은 하늘을 믿다가 망하고 인도인은 불(佛)을 믿다가 망하였다고 단언한다. 더 나아가서 계룡산의 진인(眞人)을 믿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고 먼 나라 미국이나 영국을 믿는 것도 허망하다는 것을 설파하였다.

밖에서 구원자가 와서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을 기대하는 심리와 자세는 자신이 역사와 사회의 주인과 주체임을 몰랐던 고대와 중세의 무지하고 무기력한 민중의 심리이고 자세다. 이것은 지배자의 권력 아래 예속된 신민(臣民), 농노, 노예들이 가졌던 심리이고 태도다. 이것은 결코 근현대 민주시민의 심리와 자세가 될 수 없다. 근현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과 원리는 민을 자기 삶의 주인과 주체로 보는 것이다. 근현대에 이르러 비로소 민은 역사와 사회를 형성하고 변혁하고 창조하는 주체로 인정되고 존중되었다. 밖에서 남이 와서 나를 구원해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종살이 하던 노예의 심리와 태도이다. 근현대의 민주시민은 함께 일어나서 서로 주체로서 서로 돕고 보호하면서 단합하여 스스로 구원해야 한다.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 예수, 불성, 천성(天性), 도(道), 진리가 만일 있다면 그것은 모두 오늘 살아 있는 민의 삶과 정신 속에 그 뒤에 그 위에 그 곁에 있는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은 민중의 속에서 민을 깨우고 민에게 힘을 주고 민에게 힘이 되는 것이다. 민이 스스로 일어나서 서로 주체로서 함께 일어나 서로 돕고 보호하고 합심 협력하여 단합하게 하는 것이다. 환난을 서로 구원해가도록 민을 돕고 이끄는 것이다. 그러므로 밖에서 구원자가 와서 우리를 구해 줄 것으로 믿고 기다리는 것은 고대와 중세의 낡고 부패한 거짓 신념과 주장일 뿐이다.

환난을 당한 나라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도산은 평생 동포들과 함께 나라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였다. 그의 일생은 한 마디로 환난상구(患難相救)의 삶이었다. 고난 받는 동포(민중)가 사랑으로 서로 돕고 구원함으로써 민족의 독립을 이룬다는 도산의 주장은 인류역사에서 항구적 의미를 가진 진리다. 도산은 평생 서로 불쌍히 여기고 서로 구원하는 환난상구(患難相救)의 삶을 살자고 부르짖었고 그 자신이 서로 불쌍히 여기고 구원하는 삶을 살았다.

도산의 이러한 자기개조의 교육철학은 유교에서 말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사상과 비교된다. 그가 몸과 가정을 고친다는 것은 수신제가와 일치하고 나라의 독립과 통일을 이루려고 한 것은 치국과 관련되며 세계정의와 평화에 이르는 대공정신을 말한 것은 평천하와 비교된다. 그러나 도산은 쾌재정의 연설에서 나라의 독립과 통일을 이룸으로써 세계정의와 평화에 이르려 했다는 점에서 치국과 평천하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거기서 시작해서 건전한 인격을 이루고 가정과 단체의 공고한 단결을 이루고 나라의 독립과 통일에 이르려 했다. 치국평천하와 환난상구 사이에 건전인격을 형성하고 몸과 가정을 고치고 습관과 행동을 고치는 일이 있다.

 

ㄴ) 개조의 철학과 참된 행복

 

안창호는 행복의 어머니를 문명에서 찾고 문명의 어머니를 개조하려는 노력에서 찾았다. 개조하려는 인간의 모든 노력은 인간의 자기 개조로 귀결되고 인간의 자기 개조에서 나온다. 결국 최고의 행복은 인간이 자신을 개조하는데 있다. 또한 안창호는 문명 부강의 뿌리와 씨를 민이 사랑으로 서로 ‘보호하고 단합함’이라고 했다. 인간이 자신을 개조하는 목적은 사랑으로 보호하고 단합하는 존재가 되자는 것이다. 대전형무소에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안창호는 행복은 화평에서 오고 화평은 사랑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1919년 상해의 교회에서 한 설교 ‘사랑’에서도 사랑이 ‘행복의 최고 원소’라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사랑한즉 하나님이 우리의 속에 들어오오”라고 하여 서로 사랑하는 것이 가장 위대하고 행복한 순간임을 말하였다. 인간이 자기를 개조한다는 것은 사랑할 수 없는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자기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사랑으로 서로 보호하고 협동할 수 없는 인간이 사랑으로 서로 보호하고 협동하는 인간으로 되는 것이 인간이 자기를 개조하는 것이다. 인간의 개조와 변화는 사랑을 받을 때 사랑 안에 있을 때 가장 잘 이루어진다. 사랑으로 서로 보호하고 협동할 때 사람은 사랑으로 서로 보호하고 협동하는 사람으로 된다.

사랑은 인간의 자기 개조가 이루어지는 동인이고 과정이며 목적이다. 그러므로 안창호는 병든 사람과 환난에 빠진 사람을 지극한 사랑과 정성으로 돌보고 보살폈다. 사랑 안에서 사람은 가장 깊이 감동을 받고 힘이 나고 새롭게 변화된다. 안창호가 생각한 행복은 인간이 자신을 개조하여 건전한 인격을 이루고 사랑으로 보호하고 단합하는 삶을 사는데 있다. 서로 보호하고 단합하는 것이 사랑으로 화평을 이루는 것이다. 안창호에게 인간의 최고 궁극적 행복은 사랑으로 서로 보호하고 단합(협동)하는 건전한 인격이 되기 위하여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키는데 있다. 인간의 생명과 정신, 습관과 버릇이 새롭게 변화되고 탈바꿈하여 새롭게 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안창호는 인간 자신의 개조, 창조와 진화, 새로운 변화와 탈바꿈에서 궁극적 행복을 찾았다.

행복에 대한 이러한 안창호의 생각은 철학사적으로 매우 새롭게 의미 있는 것이다. 인간의 자기 개조에서 최고의 행복을 보는 안창호의 행복관은 그리스의 고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관과 아주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궁극적 행복이 ‘이성의 관조’에 있다고 보았다. 이성의 관조는 순수하게 주어진 그대로 이론과 이치, 수리와 도형을 보는 것이지 생명과 정신의 본성과 존재를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이성의 관조는 창조와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 이성의 관조는 순수 이론적 수학적 학문적 기쁨이고 행복이다. 안창호는 인간 자신의 생명과 정신을 질적으로 새롭게 변화시켜서 고양과 향상에 이르는 인간의 자기변화를 행복이라고 하였다. 자기의 본성과 습관을 개조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의 창조자와 피조물이 되는 것이니, 가장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가장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일이다. 서양의 근현대철학도 이성적 과학주의적 철학에 머물렀기 때문에 사물과 생명과 인간의 창조적 변화를 말할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식하고 이해하는 철학에 머물렀다. 서구의 근현대철학은 자연철학이다. 인간의 본성을 자연으로 보고 그 본성을 그대로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철학이다.

동양의 철학도 자기 본성의 개조에 이르는 철학은 아니다. 인간의 본성을 하늘로부터 타고난 본연지성으로 보고 그대로 존중하고 지키려고 했다. 무위자연도 자연의 도에 순응하는 삶을 추구한 것이지 자기존재의 혁신과 창조를 말하지 못했다. 불교의 불성도 인간의 자연적 본성을 초월한 것이며 인간의 욕망과 감정과 지성을 포함한 본성을 새롭게 변화시키려고 하지는 않았다. 불성은 인간의 자연적 본성과 대립되어 있다. 안창호는 역사와 사회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정신을 새롭게 하려고 했다.

안창호는 인간의 본성이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변함없는 본성을 말한 적이 없다. 그는 인간의 자기 개조를 말했고 덕·체·지를 말하고 덕력과 체력과 지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은 당연히 새롭게 변화될 수 있고 보다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가 끊임없이 줄기차게 강조한 ‘앞으로 나아감’은 보다 나은 상태로 되는 것을 뜻했고 나아짐, 진화와 진보를 뜻했다. 인간의 자기 개조는 인간의 본연지성을 유지하고 지키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행복을 위한 인간의 자기 개조

 

교육의 목적은 건강하고 행복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인간의 몸과 맘과 얼은 저마다 제 구실을 잘 하면서 몸과 맘과 얼이 하나로 통하고 고양되고 향상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행복은 좋음(善) 그 자체를 실현하는 것이고, 좋음은 기능을 잘 하는 것이다. 조각가에게는 조각을 잘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피리 연주자에게는 피리를 잘 부는 것이 좋은 것이다. ‘좋음, 잘’은 기능을 탁월하게 발휘하는데 있다. 인간의 좋음(善)은 인간의 고유한 기능인 이성의 능력을 잘 발휘하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에게 덕(arete, 德)은 탁월한 능력이다. 기능을 잘 발휘하는 것이 좋음이고 ‘잘’이다. 좋음(‘잘’)이 선이다. 좋음 자체, 가장 좋음(最高善)에 이르는 게 행복이다. 인간의 고유한 기능은 이성을 잘 사용하는 것, 생각을 잘 하는 것이다. 이성의 기능을 잘 하는 것이 관조(觀照)다. 관조는 보고 알고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다. 이론을 탐구하는 이성적인 관조의 삶이 좋은 삶, 행복한 삶, 건강한 삶이다. 행복, eudaimonia는 좋은 정신, 영혼을 뜻한다. 로고스가 영혼의 본질과 신성을 나타낸다고 보았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로고스인 이성이 잘 관찰하고 관조하면 좋은 영혼이 되고 행복한 삶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성의 관찰과 관조로는 생명의 주체와 전체의 일치에 이르지 못하고 몸, 맘, 얼의 창조적 진화와 신생이 일어나지 않는다. 관찰과 관조로는 감성과 지성과 영성의 통합적인 실현과 완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의 참된 행복과 건강에 이를 수 없다.

인간본성의 근본적이고 역동적 변화를 말하는 안창호의 인간관은 기존의 모든 인간관, 동양의 인간관, 고대 그리스의 인간관, 근현대 서구의 인간관과 다르다. 유교는 하늘로부터 타고난 인간의 주어진 본성(本然之性)을 지키거나 실현하려고 했다. 도교는 자연 질서와 변화의 길과 방식에 순응하는 인간을 추구했다. 불교는 시공간적 구체적 현실을 부정하거나 초월한 초시간적, 초역사적 불성(佛性)을 추구했다. 그리스의 이성철학은 인간과 인간의 본성을 철저히 이성의 관점에서 봄으로써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인간이해에 머물렀다. 인간의 이성은 인간의 본성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지만 인간의 본성을 혁신하고 새롭게 창조할 수 없다. 서양의 근현대철학은 자연질서와 환경을 탐구하는 이성주의적 과학철학이었다. 자연환경을 지배와 이용의 대상으로 보고 정복하고 파괴했으나 인간의 자연적 본성, 타고난 본성은 바꾸거나 변경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인간의 본성은 자연(nature)이며 자연으로서 인간의 주어진 본성은 그대로 존중하고 지켜야 할 것이었다. 근현대 서구의 이성주의철학은 순수 이성의 계산과 논리를 추구한 수학적 사고, 물질적 인과관계와 작용을 탐구한 자연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연구하고 교육하는 학문체계를 확립했다. 수학적 논리와 계산을 바탕으로, 물질적 인과관계와 작용을 탐구하는 자연과학적 연구는 자연적으로 주어진 인간과 인간 본성을 현상적으로 설명하고 소개할 뿐 인간과 인간의 본성을 새롭게 변화시키거나 탈바꿈할 수 없다. 이처럼 기존의 철학과 사상에서는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키는 인성교육(전인교육)을 할 수 없고 인간혁명을 말할 수 없다.

유교에서 인간의 최고행복은 중용(中庸)을 지켜서 삶과 정신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중화(中和)에 이르는 것이다. 유교에서 중용(中庸)의 중(中)은 천성, 하늘로부터 타고난 본성(天然之性)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다. 중용 첫 머리에서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라고 한 것도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따르고 지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간의 본성은 하늘이 준 것이고(天命之謂性), 본성을 따르는 것이 도(道)이며(率性之謂道) 도를 닦는 것이 교(敎)다(修道之謂敎). 여기서는 인간의 본성을 창조적으로 새롭게 형성하고 변화시킨다는 생각이 없다. 유교는 인간의 궁극적이고 이상적인 경지를 중화(中和)로 보았다. 중화(中和)는 욕망과 감정이 일어나도 고르게 조화를 이루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중(中)에 이르러 천성(天然之性)을 지키는 것이다. 본성은 변하지 않는 것이고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중용의 덕성과 품성은 하늘로부터 타고난 인간의 본성(天然之性, 하늘의 도와 이치, 천명)을 지키는 것이고 하늘에 충실하고 하늘의 도리에 알맞게 되는 것이다. 감정이 일어나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내색하거나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인성, 타고난 본성인 천성을 그대로 지키는 것으로는 생명진화와 천지인합일을 이룰 수 없다. 감정을 정화하고 승화하고 고양시키며 지성과 영성을 실현하고 고양시킬 수 없다. 인성은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이며 오랜 생명진화 과정을 거쳐서 형성된 것이고 오늘 나에게 전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 인간의 본성은 새롭게 변화되고 탈바꿈하여 심화되고 고양될 것이다.

생명은 물질의 법칙적 제약과 물성적 속박을 벗어나 해탈과 해방의 기쁨과 신명, 자유와 사랑, 자발적 헌신과 희생에 이른 것이다. 생명진화와 인류역사를 통해서 드러난 인간 생명의 본성은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변하는 것이고 진화하고 고양되는 것이며 자기를 버리고 희생하고 초월하여 끊임없이 탈바꿈하고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생명은 늘 새롭게 되는 것이고 스스로 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잘 이어받아 살려나가야 한다. 인간은 자연이면서 자연을 넘어서 있다. 자연의 본성과 본질을 변경하고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인간은 자연의 본성과 본질을 변경하고 새롭게 창조할 수 있다. 내가 나의 본성을 새롭게 창조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 안창호가 말한 ‘인간의 자기 개조’는 생명진화와 인류역사를 통해 드러난 생명과 정신의 본성과 목적, 사명에 일치하는 것이며 인간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실현하는 것이고 최고 행복과 보람을 이루는 것이다. 안창호는 기쁨과 사랑의 욕구와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했고 정화하고 고양시키려 했다. 그의 사랑공부와 적극적 수양법은 생의 욕구와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실현하고 고양시키는 것이다.

 

3) 인간의 자기 개조와 교육의 방법

 

ㄱ. 개조의 방법: 기쁨, 사랑, 희망을 가진 나!

 

어떻게 사람은 능력 없는 사람에서 능력 있는 사람으로 자기를 개조할 수 있는가? 안창호가 생각한 능력은 생명과 정신의 능력이다. 따라서 덕력 체력 지력을 길러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면 어떻게 덕력, 체력, 지력을 가진 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안창호는 먼저 희망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희망을 가질 때 사람은 무기력과 무능력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가지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안창호는 식민지 백성으로서 체념하고 절망에 빠져 무기력하게 사는 청년들에게 말하였다. “우리도 오늘부터 희망을 가지고 내일의 거울을 보아 봅시다. 우선 얼굴이 좋아질 것이요, 허리도 차차 펴질 것이올시다. 그리한즉 우리 가슴 속에 쌓여 있던 슬픔이 풀려 나가고 기쁨이 들어와서 그 자리를 채워가지고 이 세상 분투하는 마당에 내어 세울 것이니 우리 사람의 놋(뇌) 속에 가장 먼저 잡아넣을 것이 ‘희망’이라 하오.”

생명은 물질의 속박과 제약에서 해방된 것이므로 본디 기쁘고 신명나는 것이며 서로 주체로서 자유롭게 사랑하고 협동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은 물질 안에서 물질적인 육체를 가지고 물질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물질적 육체적 본능과 욕망과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기부정과 초월을 통해 끊임없이 새롭게 자기를 개혁하고 창조해가야 한다. 물질적 속박과 제약에 갇혀 있는 생명은 자신의 본성과 목적을 실현하지 못한 채 상처받고 죽을 수 있으며 절망하고 좌절할 수 있다. 물질적 조건과 제약에 매인 인간은 쉽게 절망하고 좌절하여 무기력과 무능력에 빠진다. 물질의 제약과 속박 속에서 물질과 몸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인간은 자신의 생명과 정신의 본성과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물질적 신체적 제약과 속박에서 벗어나 자기를 부정하고 초월하며 자기의 물질적 육체적 본능적 생명을 정화하고 승화하고 탈바꿈하여 자기를 개혁하고 창조해야 한다. 무력한 자기를 개조하여 능력 있는 자기로 만들려면 물질적 육체적 본능적 생명을 정화하고 승화하고 고양시켜야 한다. 그리고 자기의 물질적 신체적 본능적 생명의 차원들을 승화 고양시키려면 가장 먼저 생의 본성인 기쁨과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인간의 생명과 정신은 사랑의 기쁨 속에서 가장 잘 자라고 힘차게 되고 새롭게 되고 고양될 수 있다. 생의 기쁨과 사랑에서 희망이 나오며 희망을 가지면 체념과 좌절을 이기고 무기력과 무능력에서 벗어나 능력 있는 인간으로 될 수 있다. 로마의 속담처럼 살아서 숨을 쉬는 한 인간은 희망을 가질 수 있다.(Dum spiro, spero.)

 

ㄴ.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수양

 

안창호는 능력 있는 민족, 능력 있는 사람을 만들려고 하였다. 그에게 능력은 인간의 자아와 환경과 역사를 보다 낫게 개조할 수 있는 힘이다. 이러한 힘의 원천은 생명의 근원인 사랑, 기쁨, 희망이다. 이러한 힘을 기르기 위해서 안창호는 사랑 공부를 역설했다. 사랑공부를 통해서 개조의 능력을 기르는 수양은 소극적일 수 없다. 사랑은 용감하고 모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안창호는 흥사단이 수양과 훈련의 기관임을 밝히고 흥사단의 수양법은 적극적 수양법임을 내세웠다. 그는 기존의 동양적 수양법을 소극적 수양법이라고 비판하였다. 소극적 수양은 삶에 대해 두려워하며 조그만 실수나 잘못도 저지르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소극적 방어적으로 수양하는 것이다. 이런 수양을 하는 사람들은 한번 잘못하거나 실수하면 낙담하고 포기하기 쉽다. 안창호가 말한 적극적 수양은 삶에 대해서 적극적 진취적으로 생각하고 과거의 잘못이나 현재의 부족함에 연연하지 않고 대담하게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수양이다. 실수하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고 다시 힘써서 “나아가고 나아가서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우리 흥사단에서는 (수양을) 소극적으로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하자. 소극적 수양을 하지 말고 방담적(放膽的) 수양을 취하자. 동양의 수양방법이 어떠하오? ‘마치 깊은 연못가를 걷고 얇은 얼음 위를 밟듯이 두려워 떨며 조심하고 삼가며’(戰戰兢兢 然如 臨深淵 如履薄氷), 동양에서는 수천 년간 이와 같은 수양을 취하여 왔소. ‘위험한 곳에는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곳에서는 살지 않는다.’(危邦不入 亂邦不居), 이것이 다 소극적 주의요, 기독교도 동양에 들어온 뒤에는 또한 소극적으로 흐르게 되었소. 우리 흥사단 단우는 그런 수양을 하지 말고 나는 능히 무실할 수 있는 장부요, 역행할 수 있는 장부라 생각할 것이오. 소극적 수양을 취하는 자는 한번 실수에 빠지면 전율하여 다시 일어나는 힘이 없어 점점 연약하여 가되, 적극적 수양을 취하는 자는 설혹 한 둘의 실수가 있더라도 ‘다시 접촉하고 다시 힘써서’(再接再勵)하여 ‘나아가고 나아가서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進進不棄)하오.”

 

안창호는 적극적 진취적 수양을 강조하면서 태도와 예절은 평범하고 소박하고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보았다. 과장되거나 허영이 깃든 언행을 삼가고 진실하고 소박한 말과 행실을 강조했다. “공자는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이라 하였나니 사람에게 어찌 잘못이 없겠소(人誰無過)? 무죄한 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사도 바울이 말하였소. 이상 한 말이 심상한 말이 아니오. 이후 우리 단우의 동작은 천연하고 심상하게 함이 가하오. 고의로 국궁연(鞠躬然)하게 지어서 말 것이오...겉으로 보면 평범하지만 그러나 속으로 의리를 지키며 하는 일에 충성을 다함이 가하오.”

애기애타와 적극적 수양을 말하는 안창호의 수양법은 동양의 전통적 수양법과는 다르다. 중국유교는 인간과 하늘의 일치를 추구하는 천인합일을 말했다. 천인합일을 말한 중국유학을 한국유학은 보다 철저하게 받아들여서 인간과 하늘의 직접적 일치를 강조하여, ‘하늘과 인간 사이에 간격이 없다’는 천인무간(天人無間, 李穡)을 말했다. “이황은 ‘천인무간’의 명제를 ‘천아무간(天我無間)’으로 집약시켜 철학하는 주체로서의 ‘자기’를 강조하고, 현실적으로 하늘과 하나인 존재로서의 ‘자기’를 회복하기 위하여 경(敬)을 중심으로 하는 고도의 수양 철학을 완성시켰다.” 이황이 주체로서의 자기를 강조하는 유교의 수양철학을 발전시켰지만 이것은 안창호가 말한 애기애타와 적극적 수양과는 다르다. 이황의 자기 수양은 자기를 사랑하고 활달하게 펼치는 애기가 아니라 허물이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삼가고 조심하는 소극적 수양이다. 자신의 수양을 노래한 ‘도산십이곡’에서 그가 “허물이나 없고자” 한다고 노래한 것은 그의 수양이 소극적 수양임을 보여준다. 이것은 허물이나 잘못을 무릅쓰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안창호의 진취적이고 적극적 수양과 대비된다.

안창호의 적극적 수양은 흥사단의 동맹수련에서 보다 확실하게 확인된다. 흥사단은 홀로 은밀히 수양하는 개인 수양에 머물지 않고 동지들과 더불어 수행하는 동맹수련을 실행하였다. 안창호 자신도 상해임시정부 시절에 날마다 이른 아침에 흥사단 단소에서 동지들과 함께 모여 정좌회(靜坐會)를 갖고 단전호흡을 하며 침묵하고 명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동맹수련은 동지들이 서로 거울이 되고 길잡이가 되어 서로 단련하고 수양함으로써 우정을 돈독하게 하고 신의와 단결을 심화하고 강고하게 하는 집단적 공동체적 수양이었다.

안창호는 인격수양만을 강조한 수양주의자도 아니고 제도개혁만을 추구한 행동주의자도 아니다. 그는 흑백논리나 진영논리에 빠져서 당파적이고 분열적인 생각과 행동을 철저히 거부하고 경계한 사람이었다. 그는 철저히 비타협적인 원칙과 동기와 목적에 충실한 사람이면서 매우 입체적이고 종합적이며 주체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한 지도자였다.

 

4. 나라의 근본을 세우는 인간교육, 어떻게 할까?

 

안창호는 한국근현대의 중심과 선봉에서 한민족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서 누구보다 순수하고 치열하게 헌신하고 노력했다. 그의 정신과 철학은 삼일운동과 임시정부의 정신과 철학을 가장 잘 드러내고 표현하였다. 그는 교육독립운동을 이끌었고 교사로서 큰 모범을 보였다. 안창호는 한국민족과 국가의 스승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는 근현대 한국민족의 정신과 삶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보편적 정신과 가치를 구현한 인물이다. 한국근현대사에서 안창호처럼 허물이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한결같이 바른 길을 걸어온 지도자는 없다. 민족과 세계 전체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세력과 사상들을 끌어안으며 민주와 통일의 길을 곧게 걸어온 안창호는 오늘 한국사회가 분열과 갈등에서 벗어나 생각과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인물이다. 안창호는 보수와 진보, 젊은이와 늙은이, 가난한 이와 부자가 함께 존경하고 따를 수 있는 분이다. 우리는 나라의 근본을 세우는 인간교육을 위한 내용과 방법을 안창호의 삶과 정신과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안창호의 삶과 사상에는 인간교육을 위한 깊은 철학과 내용과 방법이 담겨 있다.

나라의 근본을 세우고 인간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려면 인간교육이 필요하다. 한국과 세계의 민주시민이 되기 위하여 그리고 자유롭고 평등하면서 서로 살리고 더불어 사회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인간교육을 해야 한다.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국민을 섬기는 공무원 그리고 민주시민을 위한 인간교육을 해야 한다. 자본과 기계가 지배하는 산업사회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이 주도하는 미래 사회에서 인간이 자신의 삶과 사회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서 인간교육이 절실히 요청된다.

이미 4년 전에 국회에서 여야 국회의원 만장일치로 인성교육진흥법을 통과시킴으로써 의무적으로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인성교육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성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 까닭은 인간(인성)교육의 내용과 프로그램, 방법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교육은 주입식 지식교육이 아니라 인간의 자기 교육이므로 인간과 교육에 대한 깊은 철학이 확립되어야 하고 교육의 내용과 방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교육을 가르치고 지도할 교사를 양성해야 한다.

인간교육을 위한 철학, 내용과 방법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어떻게 인간교육을 하는 교사를 양성할 것인가? 한국근현대의 정신과 철학, 헌법전문에 제시된 삼일운동과 임시정부의 정신과 철학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 한국근현대의 정신과 철학은 인류정신사와 사상사에서 새로운 것이므로 연구의 기준과 방법이 새로워야 한다. 동양과 서양의 전통정신과 철학을 기준으로 한국 근현대(삼일운동과 임시정부, 안창호)의 정신과 철학을 연구해서는 안 된다. 근현대의 인간과 사회가 고대와 중세의 인간과 사회보다 더 나아간 것이고 더 새롭고 높은 것이다. 근현대의 정신과 철학을 연구하는 것은 나와 우리의 정신과 철학을 연구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연구하고 내가 나로 되는 길을 찾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한국근현대의 정신과 철학을 기준으로 동서의 전통과 정신을 비판하고 창조적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방식으로, 한국근현대의 정신과 철학을 연구해야 한다.

나라의 근본을 세우는 인간교육을 하려면 나라의 근본인 민주공화와 민족통일의 정신과 철학을 확립하고, 인간교육의 내용과 프로그램을 연구 창작하며, 인간교육의 교사 양성하는 연구 교육기관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유치원과 초중고에서 인간교육을 실행하고 대학과 사회에서 민주시민교육으로서 인간교육을 실행해야 한다.

 

인간교육의 철학과 방법을 연구하고 인간교육을 하는 교사를 양성하는 연구 교육 기관을 마련하는 방안을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1) 국가와 민족의 사업으로 한국근현대의 정신과 철학, 인간교육의 철학과 방법을 연구하고 인간교육을 담당할 교사를 양성하고 민주시민을 교육하는 기관을 설립한다. 국가와 사회의 지원으로 설립하되 국립 또는 민간 교육 기관으로 할 수 있다.

 

2) 대학과 협력하여 대한 안에 이러한 연구 교육 기관을 설립하고 연구하고 교육한다.

 

3) 흥사단을 비롯한 관련 기관들의 협력으로 연구 교육을 진행하면서 연구 교육의 기관의 설립을 추진한다.

 

4) 나라의 근본을 세우는 인간교육에 동의하는 인사들의 참여와 지지를 확대해 간다.

 

씨ᄋᆞᆯ사상연구소 소장, 미국 흥사단 도산사상연구소 고문 박 재 순

 


박재순  p994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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