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도산이 해방 이후까지 살았다면

박재순l승인2018.11.27l수정2018.11.28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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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도산기념관에서 ‘안창호의교육철학’에 대해서 강연했다. 조금 일찍 가서 도산공원을 둘러보고 도산의 기상과 뜻을 느꼈다. 기념관에서는 도산이 동우회사건으로 구속되기 전에 찍은 사진을 오래 보았다. 여윈 모습인데 얼굴과 눈에서 맑고 기품 있으면서 자애롭고 고결한 정신이 보이는 듯 했다.

류종렬 흥사단 이사장님과 도산을 소개하는 영상자료도 함께 보았다. 사람이 많이 모이지는 않았으나 경청하는 분위기는 있었다. 애국가 작사자 연구하는 오동춘, 박화만 선생을 만나 이야기도 나누었다. 도산은 한국근현대가 낳은 위대한 사상가이고 큰 스승이다. 독립 운동가는 많지만, 도산처럼 깊고 크고 일관된 사상을 지닌 분은 찾기 어렵다. 그이처럼 민주정신과 통일정신이 사무친 인물도 찾기 어렵다.

고매한 인격과 높은 철학을 가지고 민족독립의 큰 구상과 꿈을 앞세우며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면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과 대책을 제시하면서 민족통일의 길을 열고 끝까지 그 길로 나아갔다. 그가 임시정부를 이끌 때는 김구도 충실히 그를 따랐고 크고 작은 일들을 그와 의논하였다. 안창호가 임시정부를 떠난 후에도 김구는 안창호와의 관계를 돈독히 유지하였다. 해방 후 귀국한 김구는 먼저 망우리에 있는 안창호의 묘를 참배했다.

 

분단된 한국의 북쪽과 남쪽을 지배했던 김일성과 박정희도 안창호를 가장 높이 존경하였다. 김일성은 1927년 소년 시절에 “조선민족 독립운동의 장래”라는 안창호의 연설을 듣고 그를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그는 “이 나라가 독립된 후 나에게 대통령 선거권을 준다면 나는 첫 번째로 안창호 선생님을 추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평안도와 만주지역의 동포들과 독립군단체의 지도자들은 안창호를 높이 떠받들었다. 해방 후 김일성은 안창호의 여동생 안신호를 장관급인 중앙여맹부위원장으로 등용시켰고 안신호는 독실한 기독교신자였지만 새조선 건설에 헌신 분투했다고 알려져 있다.

남쪽의 이승만 정권시절에 안창호와 흥사단은 한국정치에서 배척되었다. 안창호가 언제나 이승만을 후원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의 사람들과 도산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에 반해 박정희는 집권하자 안창호의 부인과 가족을 초청하였다. 그는 안창호의 부인에게 극진한 친절을 베풀고 경의를 표했다. 그는 안창호의 부인에게 “만약 도산이 살아계셨다면 우리는 분단국가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말 도산이 살아계셨다면 우리나라가 분단이 되지 않았을까?


박재순  p994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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